기획 | 먹거리 들여다보기 - 감자

감자 전파의 역사

▲ 감자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티티카카호 주변의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다. 감자가 전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2년 약탈품과 함께 감자를 유럽행 운반선에 실어 보내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유럽으로 전파된 감자는 유럽인들에게 ‘악마의 식물’로 낙인찍히면서 한동안 돼지사료나 죄수와 외항선원들의 식량 정도로만 쓰였다. 폄하된 이유는 역병으로 다른 작물들이 다 죽는 가운데에서도 감자는 살아남고, 어두운 땅 속에서 자라는 어둠의 열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18~19세기를 거치며 감자는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기적의 식물’로 프랑스, 러시아, 아일랜드를 비롯한 전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저장성과 수확량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또 17세기 말 연이은 감자 풍년으로 전 유럽의 기근을 감자가 구제하면서 인구증가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1840년대 감자 역병으로 7년간 대기근이 이어지면서 그로인해 2백만 명 이상이 굶어죽고 1백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다.

산업혁명기에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간소외가 심화되던 산업혁명의 시대의 단면이 화폭에 녹아들어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감자먹는 사람들>(1885)에도 감자가 등장한다.

▲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1885, The Potato Eaters)

감자는 다양하다

현재 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이 된 감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작물로써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쌀 등 주곡을 재배하기 어려운 산간지방에서 옥수수와 함께 주요 식량작물로 자리매김 해왔다.

1928년 일본은 <남작>이라는 품종을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1968년부터 장려품종으로 지정되면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남작>은 삶으면 포실포실 분이 많이 분질감자로, 사람들에게 강원도 토종 감자의 맛으로 기억돼 있다. <남작>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가와다 남작이 영국에서 들여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쉽사리 그 맛을 보기가 어렵게 됐다. 1978년부터 <수미>가 장려품종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후, 우리나라 감자 생산량의 대부분을 <수미>가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수미>는 <남작>에 비해 병해에 강해 씨감자 확보 및 재배에 유리한데다가 지역적응성이 뛰어나 사시사철 전국에서 재배가 가능하면서 수량성까지 뛰어나 농가의 선호도가 높았던 배경이 있다. 또한 육질도 단단해 가공에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추억의 이면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남작>은 경제성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농업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센터 조지홍 박사는 11일 “남작은 분질감자로 쪄먹으면 맛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병, 더뎅이병, 바이러스병 등 병해에 약해 씨감자 생산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그에 비해 수미는 병해에 강하고 재배가 쉬워 농민들이 선호하게 된 품종”이라고 설명했다.

조 박사에 따르면 현재 한해 전국 씨감자 사용량 4만 톤 중 3만 톤 그리고 국내 감자생산량 중 약 70%를 <수미>가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감자품종은 외국품종 5종, 농촌진흥청 육종 품종 21종 , 민간에서 개발한 60여 품종이 있고, 주로 재배가 이뤄지는 품종은 10여 종이라고 한다.

<남작>과 비슷한 맛이 나는 분질감자로 <하령>, <고운>, <대서>등이 보급되고 있지만, 특유의 포근한 식감을 자랑하던 <남작>감자를 손쉽게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친환경학교급식 속 감자

감자는 학교급식에서도 많이 쓰이는 농산물 중 하나다. 서울친환경유통센터 구매관리팀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를 통해 서울 초·중·고교에 학교급식 식재료로 공급된 농산물은 총 15,399톤인데, 품목별로 비율로 보면 양파(10%), 백미(9%), 감자(7%), 무(6%) 순이라고 한다.

▲ 김상기 경기친환경급식출하회장

올 봄 2천 평 감사농사를 지어 지난 7월 경기도 친환경학교급식용으로 납품한 김상기 경기도친환경학교급식 출하회장(46, 파주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을 10일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 있는 파주 친농연 채소출하회 사무실에서 만나 친환경 감자농사와 학교급식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로 유기농 농사 13년 차를 맞는 김 회장은 2009년도부터 학교급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WTO 규정이 개정돼 공공급식에서 자국산 농산물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자 농가 조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그다.

김회장은 먼저 “친환경농산물 검수기준이 별도로 만들어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친환경학교급식에 공급되는 농산물의 검수기준은 일반농산물 기준에 맞춰 일반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농산물에 비해 특품의 소출이 적은 친환경농가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경기도 친환경학교급식에 공급되는 친환경 감자의 경우 그 기준이 150g이상인데, 올해 파주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감자 중 37~38%정도만 150g이상에 해당 한다”면서 “일반 감자의 경우는 150g이상의 비율이 친환경 감자에 비해 최소 10%는 높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을 조리해야하는 학교급식의 특성상 효율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1식당 학교급식비가 정해져있는 가운데 농산물 손질 비용을 줄여야만 하는 학교 측의 입장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김 회장은 “막상 영양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작은 감자를 안 쓰겠다고 말하는 분은 거의 없지만 작은 감자는 큰 감자를 손질했을 때에 비해 같은 시간에 손질할 수 있는 총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정해진 급식비 안에서 학교급식을 해야 하는 영양사분들의 입장에서는 선뜻 쓸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양사 개인이 작은 감자를 써보겠다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책임성이 뒤따른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지난 8일 김상기 경기친환경급식출하회장이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에 있는 그의 밭에서 올해 농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월 감자 수확을 마친 밭에 당근을 이어 심어 현재 수확을 앞두고 있다.

한편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품위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해서 올해 김 회장이 감자 납품에 지장을 받은 건 아니다. 그가 생산한 친환경 감자는 크기에 관계없이 경기도 친환경학교급식의 식재료 공급을 맡고 있는 경기친환경조합공동사업법인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전량 수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급식에 쓰이는 친환경농산물의 품위기준이 마련되어야만 친환경농가들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고심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올해 봄 감자가 전국적으로 대풍작을 기록 했지만, 경기도친환경급식에 사용되는 150g이상의 특품 감자의 양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회장은 “올해 경기도 친환경학교급식용으로 수매된 친환경감자는 총 1,700여 톤이지만 150g 이상은 700톤에 불과해 올해 감자농사가 풍작임에도 불구하고 부족분은 다른 지역에서 사와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반농산물 기준으로 큰 감자만 계속적으로 사용한다면, 학교급식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친환경농가입장에서는 안전성 검사 시 검출이 안 되는 화학비료나 촉진제 사용의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면서 “농가소득을 보장하면서 학생들에게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친환경급식농산물의 품위에 대한 새로운 규격마련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회장은 올해 감자 이외에도 유기농으로 배와 당근, 무농약으로 콩 농사를 지었다.

<유정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