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농부 정혁기

생긴지 1년이 된 가끔 들르는 밥집이 있는데 잘 된다. 내 나름대로 그 원인을 생각해 보건데, 오갈 데 없이 열심이고, 사람 좋고, 재료를 좋게 쓰는 것 같다. 한 집이 잘 되면 옆집 손님을 뺏어오는 것이 요즘 세상 서비스업의 생활경쟁 현장인데, 그래도, 장사 잘 하는 집 보면 놓치지 않고 꿀리지 않는 실이 있어서 허를 채워주는 것 같다.

국수 한 그릇 먹다가 그 밥집에 중국, 영미유럽권 나라, 일본 등지에서 오는 손님이 종종 있는데 주인이 주요 메뉴를 그들 언어로 풀어쓴 메뉴판이 필요하다고 해서 세 나라 말로 써주겠다고 받아왔다. 제일 많이 찾는 메뉴가 해물파전, 감자전 등 전류라고 일러준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3가지 말로 메뉴 쓰는 일'이 다음주 한 가지 숙제가 되었다.

가을이다. 가을이 되면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철이 흘러 열매가 열리고 물들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변해 가고 변해 오지만 사람이 여전히 철따라 사는 동물이어서 여름 지난 변한 풍광에 어찌 마음이 변하고 움직이지 않겠는가. 봄, 여름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 가실하고 건지는 철에 빈손인 때에는 이 가을 쓸쓸함이 더 하겠다. 10월 시절 이면 2013년 뱀해도 얼마 안 남았다. 머지않은 저만치서 말이 달릴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마음 달림이 역시 순탄치 않다.

가을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한창 꽃을 피어 올리는 국화과 식물이 눈에 든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국화류만이 아닐테지만 이들을 빼놓고 가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요사이 재배되어 육종되는 국화는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바르게 곧추 서는 종, 다닥다닥 송이송이 모아 피는 종, 옆으로 쓰러지듯 기는 종 등 초세뿐만 아니라 꽃잎 색깔, 꽃봉오리 모양도 품종 개발과 육종이 활발해서 국화 전시장에라도 갈라치면 그 다양함에 눈이 놀라고 다문 입이 벌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진짜 국화들이 있으니 바로 전시장과 꽃가게를 채우는 국화 말고 들과 산에 무리지어 자라는 국화과 식물들이다.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꼬들빼기, 개망초, 구절초….

이들 야생 가을꽃들은 모양이 닮아있다. 그래서 비슷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은 모아 '들국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어가면 모두 구별된 자기 이름을 지니고 있다. 쑥부쟁이 만해도 여러 종들이 있다. 개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한라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섬쑥부쟁이 등. 그래서 쑥부쟁이, 산국, 구절초 등을 난 아직 몇 가지의 단순한 특징으로 짚어볼 뿐이다. 엉겅퀴, 지칭게 등은 그래도 꽃 모양이 눈에 띄게 달라서 구별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 등은 꽃모양이 비슷하고 종류도 다양하여 구별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꽃색, 잎모양, 키 등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산국 감국은 꽃봉오리가 노란색이고, 산국은 감국보다 꽃도 작고 키도 작고, 쑥부쟁이, 개미취, 구절초는 얼른 보면 꽃의 암술수술 모인 가운데는 노랗지만 꽃잎은 보라 진보라, 연보라로 빛이 다양하고, 서로 비슷하여 잎모양을 보는데 구절초는 잎이 쑥처럼 갈라져 있고 벌개미취는 잎이 길쭉한데 톱니가 있고….

자세히 구별을 하면 더 좋겠지만 조금 모르면 또 어떤가. 가을을 지나면서 이들에 눈 길 한번 더 가는 것이거늘. 또한 허투로 알면 잘못된 정보를 전할 수도 있을 터. 정확한 구별에 대한 정리는 자신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가을에 산길, 둘레길가에 핀 '들국화'가 가을철 정취를 한층 높여준다. 감기고 꼬이고 엉클어진 심사를 진정시켜준다. 또 이들 국화과 식물들은 또다른 용도가 있으니, 꽃, 잎 등을 차로 우려 마시고, 전통 약초로도 쓰임새가 폭넓고 다양하여 여러모로 생활을 도와주는 친근한 식물이다.

더 있다. 봄에는 나물로, 자란 것은 김치로 이용되어 입맛과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