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임 용인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우리집에 새 식구가 생겼다. 음식물 쓰레기도 줄여주고 베란다 텃밭에 좋은 거름을 만들어 줄 지렁이들이다.

어디다 키울지 고민을 좀 했다. 지렁이 농장에서 나무로 만든 집을 팔기는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고 숨 쉬는 토분도 좋기는 한데 크기가 마땅치 않았다. 커다란 자배기는 어떨까 찾아보니 역시 돈이 많이 든다. 고민 끝에 베란다 텃밭용 화분으로 나온 바퀴 달린 플라스틱 화분을 두 개 샀다. 우리집에서는 ‘움직이는 땅’이라고 부른다.

지렁이가 오자 아들아이가 눈을 반짝인다. 마대자루에 분변토랑 함께 온 지렁이를 본 아들이 흙에서 캠핑장 냄새가 난다고 좋아라 한다.

사실 지렁이가 고마운 존재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막상 수십 마리가 꼬물대는 걸 보니 선뜻 손이 안 갔다. 떨리는 손으로 모종삽을 써서 지렁이들을 옮기는데 아들아이가 지렁이들 다친다고 한 소절 늘어놓더니 장갑 낀 손으로 옮겨줬다.

두 개의 ‘움직이는 땅’에 나누어 놓으니 딱 맞춤이다. 플라스틱 용기의 큰 단점은 통풍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뚜껑은 따로 하지 않고 한지로 덮어 까만 고무줄로 묶어 놨다. 마침 물려버린 귤과 바나나 껍질 모아둔 것이 있어 화분 한쪽에 넣어 주고 흙을 덮어줬다.

며칠 있다 궁금해서 지렁이 집을 들여다봤다. 먹이를 넣어 준 부분을 살살 헤쳐 보니 하얗고 작은 새끼 지렁이들이 꼬물댄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걸 보니 우리집에 와서 부화한 것 같다. ‘어라? 지렁이가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네.’ 사실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하다.

푹 무르고 숙성된 먹이를 좋아한다 해서 과일껍질이나 푸성귀 찌꺼기는 따로 모아두고 있다. 아직은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음식물 쓰레기가 이만큼 줄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된장 가르기를 했다. 올해에는 간장을 빼지 않고 된장만 만들 생각이어서 메주 생산자님이 보내준 비율대로 물과 소금의 양을 따랐다. 메주는 푹 잘 물러서 잘 치대질 뿐 아니라 빛깔과 냄새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된장 농도가 죽처럼 질척이는데도 간장이 너무 많이 남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간장을 남겨 놓은 채로 된장을 항아리에 담았다. 바로 다음날 생산자님과 통화를 해보니 생산자님은 비율이 헷갈리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어르신들은 소금물을 봐가며 조절을 한다고 하신다. 헉, 레시피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참 난감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간장을 전혀 빼지 않고 된장만 만들기는 쉽지 않다. 된장 농도에 맞추어 물을 가늠하면 메주가 소금물에 잠기지 않는다. 메주가 푹 잠길 만큼 물을 쓰면 된장 농도가 너무 묽어 물이 생기는 된장이 된다. 결국 맛난 된장이 목적이라면 겨우 메주가 잠길 만큼만 물을 잡고 된장을 가를 때 된장 농도에 맞추어 메주가루를 넣거나 간장을 조금이라도 빼내야 가능하다. 역시 실패하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생산자님이 알려준 대로 남은 간장은 바짝 졸여 절반은 된장에 다시 섞어 놓았다. 다른 절반은 생수병에 담아 놓았다. 질척이는 된장 농도를 맞추느라 냉동실에서 잠자던 미숫가루도 넣어 주었다.

이렇게 사연 많은 된장 항아리도 새로 식구가 되었다. 맛만 훌륭하다면야 이 모든 수고도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