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대응방안 토론회'가 3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열리고 있다.

올해 말로 관세화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개최한 첫 공론의 장에서 정부와 농민단체의 입장이 극명히 갈렸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는 3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쌀 관세화 유예 종료에 대비해 쌀 시장 개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대응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부는 사실상 쌀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WTO협정문의 과도한 유추해석 등을 지적하면서 식량주권 차원에서 쌀 문제를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과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주제발표자로 나섰고, 이정환 GS&J 이사장을 좌장으로 임병희 쌀전업농중앙연합회 정책부장,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최재관 여주시농민회 교육부장,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토론을 펼쳤다.

정부 “현상유지 불가능. 일시 면제는 의무수입 증량 부담”

▲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이 '쌀 관세화 유예 종료 주요 쟁점'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정부 측 발제자로 나선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관세감축 의무를 이행한 만큼 DDA협상 타결 시 까지는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는 농민단체의 주장에 대해서 “관세화를 하지 않으면서 의무수입 물량도 늘리지 않는 방안이 가능하다면 최선일 수 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이 법률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 박수진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

근거는 필리핀의 일시적 의무면제(웨이버)사례. 박 과장은 “2012년 6월 관세화 유예가 종료된 필리핀의 경우 현상유지가 불가능해 의무수입물량을 2.3배(35만톤→80.5만톤)를 늘리는 것을 조건으로 WTO에 웨이버를 요청해 관세화 유예 연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과장은 “쌀 관세화 유예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필리핀처럼 웨이버를 얻을 필요가 있다”면서 “웨이버를 얻기 위해서는 의무수입물량 증량 등 대가 지불이 불가피하며, 웨이버 기간이 끝나면 관세화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관세화 시 관세율과 관련 박 과장은 “관세를 부과한 수입 쌀 가격이 국내 쌀 가격보다 높으면 국내 시장에서 국산 쌀의 경쟁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농민단체 “관세화는 관세 철폐로 이어질 것”

▲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쌀 관세화 유예 종료에 대한 입장'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를 대표해 발제에 나선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UR협정 이후 관세 감축 의무를 이행했고, 세계 각국이 DDA를 통해 새로운 규정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우리나라만 추가 개방 의무를 가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현재의 수입물량을 유지하며 관세화를 유예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또 박 위원장은 “WTO는 각 나라가 자국의 통상 이익을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 쌀의 관세화 유예 문제도 협상의 문제이지 조문에 따라서 자동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국내 정부는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시각으로 협상에 앞서 먼저 접고 들어가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인도의 사례를 들었다. 인도는 식량보장법을 제정 전 국민의 68%에 대해 식량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정가격에 수매를 실시 WTO의 보조금 감축 약속을 위반했다. 하지만 WTO 회원국들에게 자국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성을 요구·관철시켰다는 것.

또 박 위원장은 고율관세로 국내 쌀 산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 “정부가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에서 쌀 관세 감축을 예외로 한다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라며 “고율관세를 정하기도 어렵지만, 지난 20년간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보면 쌀을 관세화 하는 순간 다음 단계는 관세감축이고 그 다음 단계는 관세 철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박 위원장은 농지감소, 식량자급률 하락, 혼입쌀 유통 실태 등을 언급하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쌀을 비롯한 국내 농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과가 정해진 토론회로 비춰져”

▲ 종합 토론 참석 패널. 왼쪽부터 임병희 쌀전업농중앙연합회 정책부장, 유춘권 농협경제연구소 유통연구실장,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장,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정환 GS&J 이사장,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 최재관 여주시농민회 교육부장,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이어진 토론에서도 평행선 양상은 계속됐다. 하지만 농민단체를 대표해 참석한 패널들은 정부의 협상태도를 일제히 문제 삼았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2004년 말 관세화 유예를 할 때 한 차례에 한해 가능하다고 협정문에 나와 있다”며 “2004년에도 의무수입물량을 두 배 늘리고 한 관세화 유예를 지금 하나도 안 늘리고 관세화를 유예하자는 것은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며 정부 입장에 힘을 실었다.

임병희 쌀정업농중양연합회 정책부장은 “정부에서 FTA에서 쌀 양허를 제외하고 TPP에서도 쌀 개방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농식품부는)윗분들이 정하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농림부뿐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약속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런 논의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임 부장은 “정부에서 6월말까지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하는데, 현장 농민들이 가장 바쁜 시기에 누구에게 설명하고 의견 수렴을 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오늘 토론회는 정부가 이미 입장을 정해놓은 것처럼 비춰진다”며 “현상유지는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다. 정부의 신뢰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재관 여주시농민회 교육부장은 “최근 쌀자급률이 80%대로 떨어졌는데도 농지규제를 완화하고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혼합쌀 부정유통을 방조하는 정부에서 20년 전 조항을 유추해석해서 무조건 관세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면서 “미국도 WTO협정을 어기고 수출보조금 특혜를 받고 있다. 우리의 관세화 유예도 특혜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임병희 쌀전업농중앙연합회 정책부장

▲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 최재관 여주시농민회 교육부장

토론회에 앞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종교·노동계 관계자들과 함께 aT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 시장 전면개방은 농업의 근간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전농은 이달 중순까지 ‘식량주권 지키기 범국민 운동본부’를 결성 하는 한편, 6·9월 대규모 농민대회와 지방선거 공간에서 쌀 개방 찬성 후보(정당)에 대한 낙선운동 등을 전개하기로 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 공청회 등을 추진해 오는 6월말까지 관세화 여부를 결정, 9월말까지 WTO에 관세화 여부를 통보한다는 뜻을 밝혔다.

<유정상 기자>

▲ 이날 토론회에 앞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aT센터 앞에서 '쌀시장 전면개방 저지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