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PDF 파일 지면 8면 참조

===>>지면보기

한도숙 시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면사무소 앞 길거리에 이팝나무를 기둥삼아 나부끼는 새빨간 펼침막이 묘하다. 배고픔의 기억이 잔뜩 묻어있는 이팝나무와 새빨간 새누리당의 쌀 6만톤 격리펼침막의 묘한 ‘앙상블’이 얄팍하다.

이팝나무꽃이 피기 시작 하면 모내기에 들어간다. 들녘이 기계소리로 윙윙대고 논들은 점차 파랗게 물들어 간다. 이건 숫제 싸움이다. 옛날에는 일종의 놀이였다. 모내기놀이, 온동네 사람들이 두레를 놀며 음식을 해대고 아랫배미에서부터 모내기가 시작된다.
 
꽹과리 나발소리가 동네마다 낭자하고 보리밥일지언정 아이들도 주린배를 채우는 그야말로 놀이며 잔치마당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은 싸움판으로 변했다. 트랙타와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 병해충과의 싸움 그렇게 싸움판으로 변했다.

연일 싸움에 지친 농민들에게 또 다른 싸움판이 벌어졌다. 지난 8일 정부의 식용수입쌀 수입공고에서 시작 됐다. 전농과 전국쌀연합회 간부들이 aT나주본사로 찾아가 사장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농민들은 그 자리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중과부적 농민들은 벌떼처럼 달려든 경찰들에 의해 처참하게 내동댕이쳐졌다. 농민들의 분노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정당한 결정이라면 왜 농민들을 만나주지 못하는가. 왜 농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가. 왜 그렇게 농민들을 험한 공권력으로 내동댕이쳐야 하는가. 발단은 이렇다. 쌀이 남아도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인이야 수입쌀이다. 잘못된 무역협상 체결로 모자라지도 않는 쌀을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이 잘못이다.
 
그것도 해마다 2만 톤씩 늘려가고 수입이 자유화돼도 40여만 톤을 그대로 유지해서 의무수입 하도록 결정한 머저리들의 협상결과 때문이다. 알고 있듯이 그런 결정을 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거기까지도 농민들은 후퇴했다.

하지만 작년 산 쌀값이 힘없이 무너졌다. 농민들은 추가수매를 해서 시장에서 격리하라고 요구했다. 부랴부랴 국회에서는 7만7천 톤을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aT는 의무수입물량 일부를 수입공고 했는데 거기 밥쌀용쌀 1만 톤이 포함된 것이다. 이런 엇박자가 일어나는 것은 정부의 속내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밥쌀용수입쌀 금지는 2014년에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우리가 얻어낸 결과물이다. 의무수입물량의 30%는 밥쌀용쌀로 수입하던 조항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것이나마 농민들 숨통을 트이게 하는 조치였다. 그런데 수입쌀을 밥쌀용으로 하겠다는 것은 농민뿐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513%관세도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WTO에서 이면 합의가 일어나고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농업을 위한‘ ’농민을 위한‘이라고 새빨간 거짓을 선전하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정책은 ‘포르노’ 정책이다. 이팝나무기둥에 팔랑거리는 펼침막의 의미는 표피적 관심을 극대화하는 우민화 정책의 전형이다. 이팝나무 고봉밥의 꿈은 우리스스로가 지켜가야 할 꿈이다. 단순히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이팝나무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꾸어왔던 이팝나무의 꿈이 바로 식량주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