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호 PDF 파일 지면 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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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아이 둘은 학교 다니는 내내 급식에 불만이 별로 없었다. 가끔은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맛있다고 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급식에 만족했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급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종종 물어봤지만 아이들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면에서 난 꽤나 운이 좋았던듯하다.
 
적어도 아이들이 다닌 학교들이 급식비와 관련한 비리가 발생한 적도 없고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익산으로 전학시킨 후에는 급식의 질은 더욱 좋았다. 그 원료 면에서나 조리면에서나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학생수가 서울보다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학년이 100명이 채 안되는 초등학교, 300명 남짓의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원료농산물을 비교적 구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덕을 톡톡히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등학생인 딸이나 그 친구들에게 급식에 불만이 없는지 종종 물어본다. 아이들이 가끔 급식 메뉴가 맛없는 거라고 나가서 사먹자는 계획을 세우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 어느 날 딸에게서 급식에 대한 평을 듣고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학교 급식에 나오는 국, 김치, 나물 등의 반찬을 아이들이 꺼려한다는 이야기가 항상 아이들의 편식이라는 식습관과 연결지어 나올 때 마다 항변하곤 했다.
 
어르신들 말씀이 나물은 양념맛이라고 했다. 그런데 학교급식에서 쓰는 양념은 하나같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것들이고 이미 표준화/규격화된 것들이다(표준화/규격화의 문제는 본지 제33호의 글 참조). 언제 먹어도 같은 맛의 양념으로 조리된 것이 원료가 바뀐다고 맛이 달라질 리 없다.
 
더구나 그 양념으로 끓인 국이나 찌개, 김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그 외의 반찬인 고기반찬에 눈을 돌리게 된다고 항변해 왔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고기반찬마저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 학교 고기반찬은 원료만 바뀌고 거의 매일 계속 똑같은 거를 줘.’ 그랬다. 고기마저도 원료가 소고기이건 돼지고기이건 닭고기이건 심지어 생선이건 간에 그것이 간편한 조림류인 경우에는 똑같은 양념이 쓰였던 것이다.
 
그러니 원료는 항상 다르지만 그 맛은 항상 똑같은 반찬을 먹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라. 아마 어른들에게 매일 그런 반찬을 준다면 한 달을 못 버틸 것이다. 그러나 힘없는 아이들은 그저 입학하면 졸업할 때까지, 아니 상급학교를 진학하더라도 표준화/규격화한 양념을 쓰는 한 12년을 똑같은 맛의 반찬을 먹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지나친가?

아이들의 입맛은 이렇게 솔직하다. 어쩌면 솔직하지 않은 것은 도시락을 싸지 않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급식을 매일 먹어야 하는 아이들의 눈으로, 그 눈높이에서 급식을 바라보기 보다는 우리가 도시락을 싸던 시절, 김칫국물이 흘러 교과서를 적셨던 그 시절과 비교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의 솔직한 입맛을 우리들의 30년 전과 비교하면서 억눌러왔던 것은 아닌가 말이다. 사실 나는 딸과 그 친구들에게 학교급식에 대한 불만보다는 제일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일이 횟수로 따지자면 더 많다. 그리고 아이들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아이들이 모두 다르듯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콩나물에서부터 특정 드레싱을 언급한 샐러드까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은 의외로 채소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육류나 생선류의 반찬을 말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수보다는 채소류를 말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급식의 문제점을 말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아이들의 편식, 그것도 고기만을 찾는 편식에 대해 숱하게 말해왔던 어른들의 편견을 완전히 깨뜨리는 답변들인 셈이다. 솔직히 일선에서는 이미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그런 아이들의 입맛을 위해 지금도 다양한 새로운 조리법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반찬으로 만들어내는 영양사와 조리사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다. 김치를 직접 담거나 장류조차 직접 담으려고 시도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다고 들었다.

문제는 이런 노력을 뒷받침할 제도적 노력이다. 지나치게 위생이나 안전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맛을 위한 제도도 필요한 때이다. 딸과 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3이 되도록 12년 이상을 학교급식에 질려하지 않고 그래도 나름 입맛을 잃지 않고 그 맛을 논평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