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호 PDF 파일 지면 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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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시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대표적 친박모임이라고 알려진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26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조찬을 겸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조찬 세미나 강연자로는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쌀 수탈’을 ‘쌀 수출’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나섰다.
 
권희영 교수는 정부가 출연한 한국학중앙연구소 교수이며 ‘우편향’ 논란을 빚은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권희영교수는 이후 jtbc토론프로에서 쌀수탈이 쌀수출이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이미 일본에 의해 수탈당한 역사라고 모든 기록들이 증명하고 있는데 돈을 받았기 때문에 수출이라고 하면 수탈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알면서도 그렇게 호도해야만 한다면 숨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쌀의 반출로 백성이 굶주리고 나라경제가 흔들리는데 수탈이 아니고 수출이라고... 이렇게 학자들이 곡학아세를 하면 말세가 된 것이라고 역사는 말했다. 박정희의 잘못된 역사를 덮고 나아가 미화하려는 효심 하나 때문에 “까라면 까는 자”들과 “알아서 기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들이 반대여론이 높아도 청와대는 “그까지거” 천하에 없는 국민무시 여론무시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한다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실과 진실을 가르치던 교사들이 “미치광이”가 되어버리는 상태에서 그들이 노리는 것은 국민의 우민화다. 모두가 공주님전에 엎드려 “지당하옵니다”를 복창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하필 예를 들어도 고약하게 쌀을 들고 나온단 말인가. 지금 농민들은 쌀 문제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쌀농사가 끝난다면 우리농업은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몇일 전 수많은 농민들이 서울로 상경시위를 한 것은 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지금 정책으로 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쩐 심산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농민들에게 사약을 내리려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미국에 가서는 무얼 했는가. TPP에 가입하겠다고, 아니 TPP에 가입하게 해 달라고 조르고 왔다. 당연 오바마는 시큰둥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의 노동자들이 TPP를 결사 반대한다고 하지 않는가. TPP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이 차기 선거에서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TPP는 선언수준에서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TPP에 가입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사실 TPP는 환태평양 12개국의 자유무역벨트다. 우리나라는 이미 12개국 중에 10개국과 FTA협정을 체결했다. 그만한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TPP가입에 부정적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초기 TPP 협상에 미국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초 TPP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입장이 적극적으로 선회했다. 그것이 박근혜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앙탈하듯 TPP가입을 애원하고 돌아온 이유다. 1859년 일본은 요코하마와 나가사키를 개항했다. 그리고 프랑스식의 근대잠사공장을 설립했다.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일하지 않아 관료의 여식들이 공장에 취업할 정도였으나 얼마 안돼 오사카 등지로 확대 되어 일본의 주력상품이 될 정도로 확장되었다. 일본은 잠사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유지했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먹어야 하는 주식인 쌀만은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야 했다.
 
1876년 운요오호를 강화도로 파견하여 일을 꾸몄다. 황해바다를 침략한 이양선에 조선이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수심측량작업을 하는 배에 공격을 했다는 이유로 무력을 앞세워 협상을 요구했다. 그들은 네덜란드나 미국의 페리제독이 했던 것처럼 개항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개항의 목적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고종13년에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이다. 정확한 이름은 조일수호조규(朝日守護條規)이다. 강화도조약을 맺은 직후, 1883년 7월 25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새로운 통상장정이 맺어졌다. 이 때 양측의 전권대사는 조선에서는 민영복, 일본은 다케조 신이치로이다. 당시 조선정부의 입장은 쌀의 무역을 금지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그동안 왜관에서 이루어지던 쌀의 공무역을 공식적 통상품목으로 확인받으려 했다. 쌀은 조선에서도 부족한 품목이었고 쌀의 수출이 일어난다면 가격폭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협상전권대신인 민영복은 자연재해 등으로 개항장에 거류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항구간의 미곡이동을 전제로 협상을 타결한다. 그러나 민영복은 당시 일본측이 개항장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삭제하면 쌀의 수출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을 빌미로 일본은 쌀을 자국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민영복은 일본이 어르고 빰치는 통에 지레 겁을 먹고 나중에 문제가 될 장정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나는 쌀을 수입이라는 명분으로 강탈해 갔다. 이걸 수출이라고 주장하는 얼빠진 학자들이 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니 술취한 상태로 운전하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결국 관료들의 보신책으로 말미암아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농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저 갑오년 죽창을 들고 일어서지 않았던가.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이어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삶이 온전히 기록 되어야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들과는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역사를 바꾸어 내겠다는 것은 일본의 우익들과 무엇이 다른가.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에서 쌀을 강탈해 가도록 팽개쳐 백성들을 도륙하게 한 그 시대의 관료와, 불평등한 한미FTA와 TPP에서 쌀의 무조건 적인 개방으로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지금의 대통령과 관료들이 다를게 없다. 역사는 분명 그렇게 기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