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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칼럼]쌀‘, 약속’만이라도 지켜라[53호/2면/공공급식/김은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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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2  18: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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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PDF 파일 지면 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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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 이제 탄식만 나온다는 농민들의 말이 왜 이 나라 정부에 가닿지 않는가. 지난 11월 14일 쌀대책을 요구하던 한 농민 어르신이 물대포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지 정부가 쌀에 대해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목숨을 노린 물대포였다.
 
이 정부가 ‘쌀’에 대해 약속한 것은 밥쌀 수입은 하지 않겠다는 것과 쌀값 21만원을 보장하겠다는 것 딱두 가지이다. 나머지 그들이 늘어놓는 미사여구는 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해 내놓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에서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사법시험의 향방이다. 처음 로 스쿨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정부가 한 약속은 ‘다양한 분야에 특화된 변호사를 교육을 통해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법시험을 통해 합격자를 선발함으로써 생겨나는 특정학교 중심의 서열화, 고시낭인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다양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했다.
 
그래서 2016년 1차시험, 2017년 2차시험을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제도를 폐지하고 로스쿨에서의 교육을 통해 누구나 원하면 변호사가 될 수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공부 잘하는 학생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법조인이 되어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로스쿨 인가신청을 할 때 학교들은 자신들이 특화할 분야를 정해서 신청하도록 했다.

막상 인가 결과가 나왔을 때 가장 놀란 것은 25개의 로스쿨 가운데 ‘통상’ 내지는 ‘무역’이 특성화가 아닌 학교가 불과 5개도 안되더라는 것이었다. 아, 법조계조차도 ‘자유무역’이 관심사의 주류라니. 어쨌든 로스쿨의 가장 큰 관심사가 ‘사법시험의 존치여부’가 된 것은 단지 로스쿨 학생들이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로스쿨도입에서 정부가 약속한 것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쌀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로스쿨학생들이나 농민들이나 하나같이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약속한 것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약속을 지키라는 단 하나의 요구를 하나하나 다 따로 떼어내어 교묘하게 집단이기주의의 논리로 둔갑시키고 있다.
 
솔직히 쌀값 21만원이 생산비를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농민들은 없다(한국농정신문 2013년 11월 1일자 ‘쌀 한가마 생산비만 23만3,106원’기사 참조). 그러니 농민들의 요구는 생산비가 보장되기 때문이라거나 21만원 받아서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 쌀을 보내자는 것 역시 이를 통해 남아도는 쌀 문제를 해결하여 정부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농민들이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 준 것이다. 근데 그것조차도 ‘종북’논리에 써먹는 꼴이라니. 이것은 밥쌀 수입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땅에도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WTO협정 어디를 봐도 굳이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게 ‘밥쌀’이다. 그 ‘밥쌀’수입을 안하겠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농민들이 ‘밥쌀’이 아닌 쌀 수입은 괜찮고 ‘밥쌀’수입만 안되기 때문이 아니다.

농민들은 누구도 쌀 수입 그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쌀’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를 보지 않고 그 정부를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는 것이다.

언론이나 방송 어디를 봐도 ‘약속’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그 손가락의 주인을 나무라기 바쁘다. 사람들은 흔히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는 개개인 간에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관계에서의 기본적인 신뢰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인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꼽는 것도 부모가 자식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그 약속의 대상이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일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 쌀에 대해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 그것은 냉정히 따져 농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농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정부가 약속한 그‘두 가지’만이라도 지키라고 하는 것이 물대포를 쏘아 생명까지 앗아갈 정도로 무리한 요구였다는 말인가. 정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약속만이라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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