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PDF 파일 지면 7면 참조

===>>지면보기

요즘 온 국민의 관심이 오는 4월 13일 치러지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쏠려있다. 각 당들이 이번 총선에 출마할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이합집산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 여과없이 공개되면서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다.
 
조만간 총선 후보들이 결정되고, 국민들은 잠시나마 국민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서 우려가 앞선다. 정책은 없고 계파만 있다. 공천 결과에 따라 정치인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탈당을 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이리치고 저리치면서 마치 정치 드라마를 찍는 것 같다. 출연 연예인은 전문가 패널들이다. 언제가부터 TV에 나오는 전문가란 사람들은 참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어깨에 힘을 쭉 빼고 영혼도 많이 담지 않는다.

우려스러운 건 TV에 나와 장군멍군 하는 전문가들의 모습 때문만이 아니다. 답답하고 한심스런 모습 때문에 가끔 화도 나지만, 그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우려스러운 건이를 보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이다.
 
TV를 보며 한심스럽다며 욕을 하는 사람이나 즐거워 낄낄거리는 사람이나 다 같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얼마나 3류스러웠으면 벌건 대낮에 저렇게 3류 정치드라마를 찍어댈 수 있겠는가. 시의원이건 국회의원이건, 시장이던 대통령이던 이들은 국민의 주인(오너)이 아니라 공복(심부름꾼)일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순간 그들은 국민의 공복이 아닌 지도자가 되고, 지배자가 된다. 물론 겉으로는 심부름꾼이라고 하지만, 당선되는 순간 대부분 지도자가 되거나 지배자가 되는게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국민들이 국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부름꾼이 심부름을 잘 못하면 혼을 내야 하는데 오히려 심부름꾼에게 잘 못 보일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지난 2012년 4월 11일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당시 4·11총선의 가장 큰 이슈는 ‘한미FTA 국회비준’이었다. 2011년 11월,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한미FTA 국회비준을 날치기로 처리하면서 전국적으로 난리가 났다. 농민들은 통곡하며 국회의 담을 넘고, 많은 시민들이 이들 농민과 함께 농업을 지키자고 호소하면서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당시에도 수 많은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한미FTA 국회비준을 날치기 처리한 한나라당의 정치적 사망을 예견했다. 날이면 날마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미FTA 국회비준을 날치기로 처리한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그런데 4·11총선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다.
 
존폐의 기로에 몰렸던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개명하면서 다수당으로 우뚝 섰다. 이러한 결과는 특히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농민들이 한미FTA 국회비준을 날치기 처리한 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그 후 우리나라 농업 상황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훼손됐다. 어느날 갑자기 농식품부 장관이 전면적인 쌀 개방을 선언했다. 이에 일부 농민들이 저항했지만 정부는 513%의 관세 적용과 밥쌀용 쌀은 절대 수입하지 않겠다며 농민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러 저항이 가라앉자 정부는 전격적으로 밥쌀용 쌀수입을 선언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정부가 결정한 일은 모두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됐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엄연한 행정 절차를 거쳐 승인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에 분개한 농민들이 장관 사퇴를 주장하며 데모를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어긴 건 농민들이라며 무자비한 방법으로 데모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것이다.

결국 쌀 전면 개방을 한 것도, 식용 쌀수입을 결정한 것도, 백남기 농민을 뇌사상태로 몰고 간 것도 모두 우리 자신들이다. 2012년 4·11총선에서 제대로 주인 노릇을 했었더라면, 그리고 그 해겨울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한미FTA국회비준을 날치기로 처리한 당의 대선 주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지만 않았어도 이러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4·13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 나라의 주인은 여당도 야당도 대통령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지 말고, TV에 나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는 사람들의 입만 보지 말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누가 그러한 일을 맡기기에 적임자인지 주인답게 제대로 판단하는데 집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