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 PDF 파일 지면 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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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선 태평역과 모란역 중간쯤에 위치한 골목길을 걸었다. 미세먼지가 많다지만 봄날 오후의 햇볕은 따사롭기만 했다. 성남 수정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제 몸집만한 가방을 짊어지고 꼬마 여자아이가 쫄랑쫄랑 걸어온다. 학교가 파해 집으로 향하는 길이리라. 그런데 아이입에서 종알종알 나오는 것은 우리말이 아닌 중국말이다.

그러고보니 오는 길에 중국어 간판이 유난히 많았던 것이 생각났다. 양꼬치집, 중국 식료품점은 물론 외국돈을 원화와 바꿔주는 환전소도 있었다. 지역적 특성을 짐작할 만했다.

“저희 학교는 학년 당 4학급에 전교생이 600여명인데, 다문화 가정 학생이 많아서 다문화연구학교로 지정된 곳이에요. 우리말에 서툰 학생들을 위해 글로벌인재반이라고 별도의 학급을 운영해요. 그러다보니 가정 형편이 좀 어렵거나 한부모 가정인 아이들도 꽤 있지요…….”

집에서 부모가 잘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이 급식을 정말 맛있게 잘 먹는다’며 심나은 교사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상대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으리라. 학부모들도 학교에서만큼은 아이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곤 한다.

심나은 성남 수정초등학교 영양교사
“자라나는 학생들은 아직 성장 중이기 때문에, 작은 차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어른에 비해 아주 예민해요. 이렇게 어렸을 때 학교에서라도 친환경 식품을 접해보는 것은 정말 큰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이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친환경 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죠.
 
이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요. 소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친환경 농사도 늘어나지 않겠어요. 학교에서 소비를 해줌으로써 친환경 농민도 살리고, 환경도 살아나는 중요한 기능을 친환경 급식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심 교사는 2013년 3월에 가평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양교사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 수정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올해로 2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심 교사 본인도 소비자가 되어 장바구니를 들면 비싸서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것이 친환경 농산물이다.
 
이런 식재료를 학교에서는 지자체의 도움으로 맘 놓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하지만 친환경 급식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식재료 관리 투명성에 대한 소통 필요해 “저희 학교에서는 성남시 학교급식지원센터에서 물품을 공급받아 사용해요. 물론 센터를 90% 이상 신뢰하지만, 제가 직접 고르는 게 아니고 주는 대로 받아쓰게 되니까 만족하지 못할 때도 있죠.
 
특히 경기도는 껍질을 깐 감자, 깐 양파 등 전처리된 식품을 많이 쓰거든요. 아침 여덟시 반 부터 30여 분간 식재료 검수를 하고 9시부터 조리에 들어가는데, 식재료 검수할 때 많이 예민해져요. 무 같은 것은 다 갈라서 속을 확인하죠.”

심 교사가 식재료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품질 때문이다. 친환경농산물은 관행 재배된 농산물에 비해 크기가 작거나 외관상 볼품이 없는 등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일의 경우 당도가 떨어지는 것들도 많다. 반품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지만 과일의 당도가 너무 낮은 경우, 할 수 없이 반품한 적도 있다.

그러잖아도 아이들이 잘 안 먹는데, 급식 책임자로서 맛이 너무 없는 과일을 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경기친환경조합에서 식재료를 공급받았는데 지금 이용하는 성남시 학교급식지원센터도 품질은 좋은 것 같아요.

지난해 저희 학교에 들어오는 식재료에 대해 농산물 안전성 검사를 했는데 다 ‘합격’ 판정을 받았어요. 급식센터에 바라는 점은 첫째도 둘째도 품질 관리죠.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공급해주시는 것. 친환경 농산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양해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학교 전체의 급식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일선 영양교사들은 급식지원센터가 대주는 식재료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인데, 경기도 친환경급식정책에 대한 홍보나 업체 관리의 투명성이 아직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고 심 교사는 말했다.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업체가 어떻게 관리되고, 친환경 인증제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도 좀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교육청이나 급식지원센터, 친환경업체 등이 학교 현장과 더 진정성 있는 소통을 위해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제 영양교사 4년차에 접어들지만, 경력이 오래된 분들 못지않게 급식에 대한 민원이란 민원은 다 겪어보았어요.(웃음) 수백 명에게 일괄 공급되는 단체급식이다 보니, 그리고 특히나 먹는 문제이다 보니 생각처럼 수월하지만은 않은 거죠.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급식은 반드시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인다는 보람은 그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으니까요.”

“ 영양교육에 충실할 수 있게 행정업무가 좀 줄었으면”인터뷰를 위해 학교를 방문한 시각이 오후 3시. 마침 급식실은 바닥 물청소가 한창이었다. 병설 유치원과 교직원들을 포함해 770여명의 점심식사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급식실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조리원들은 이제 퇴근이지만, 심 교사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일을 좀 해야 하는’ 시간이다. 일단 오늘 치 식단과 급식에 대한 일지 형식의 평가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재를 받아야 한다. 식재료 등의 예산 관리 및 조리 기기 관리, 혹시나 모를 조리 과정에서의 안전 사고 관리, 식중독 사고 관리도 전적으로 영양교사의 책임이다.

“급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제가 계속 신경을 써야 하니까 맘 놓고 제일을 할 수가 없어요. 조리원들이 다 퇴근하시고 나면 그때부터 서류 작업을 시작하죠. 사실 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영양교사가 이렇게 행정업무를 많이 담당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 안전 관리, 품질 관리 등의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서류 작업이 너무나 많습니다. 행정 절차상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일들에 매달리느라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빈틈없이 돌아가는 하루일과를 해내다 보면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 태반이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영양 교육이나 식습관 교육을 할 시간은 늘 부족하다. 영양 교사로서 자신의 교육관을 펼치고 싶은 심 교사로서는 복잡한 행정 절차를 단순화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아쉽기만 하다.

요즘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급식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음식물 줄이기’를 꼽고 있는데, 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식습관 교육을 하고 싶지만 좀처럼 여력이 나지 않는다.

“영양교사 일은 참 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간관리자이기 때문에 누구의 편을 드는 것도 조심스럽고,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신경쓰일 때가 많아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조리원들을 통솔하는 것도 처음엔 많이 낯설었지요.

지금은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며 대화와 협력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식단 역시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반영해 최선을 다하지만, 평가는 먹는 사람의 몫이다. 조리원들과 합심해서 원했던 식단과 맛이 나왔을 때, 학생들이 새로운 메뉴를 통해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을 때, ‘선생님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는 칭찬이 돌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심 교사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