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 PDF 파일 지면 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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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슬로푸드 총회에서 한국협회 신임 상임이사로 선출된 고재섭 이사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몸과 마음의 건강 문제를 평생 좇아온 인물이다. 김정문알로에 자연의학연구원장, 팔당생명살림 상임이사, 2013년 남양주에서 열린 아시오구스토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그는 커피 관장과 생즙 단식 등을 골자로 한 디톡스 건강법을 연구해 강의와 인터넷 홈페이지등을 통해 전파해왔다.

재정 문제 등 한국협회가 풀어내야 할 숙제가 많은 가운데 상임이사의 중책을 맡게 된 고 이사를 3월 24일 남양주시 지금동에 있는 한국협회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2007년에 '슬로푸드문화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슬로푸드 운동이 태동한 지 9년, 2014년에 슬로푸드한국협회가 정식 발족한 지는 2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슬로푸드의 한국 내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교육”을 꼽았다.

“슬로푸드 교육은 사람들에게 음식과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우리가 음식을 주의 깊게 선택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오감을 일깨우는 슬로푸드의 미각 교육이나 음식과 농업을 요리로 연결하는 맛 워크숍 등은 기존 식생활교육에 신선한 반향을 주었죠.
 
또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개최한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은 지역 음식을 매개로 한 다양성의 소중함과 전통 음식 문화 및 먹을거리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필요성, 종자보존의 중요성 등을 알렸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이미 세계화되어 식량체계를 지배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향후 한국협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은 ▲지부 강화와 ▲재정 안정화, ▲맛의 방주 활성화 세 가지다. 풀뿌리 회원들로 구성된 지부 활동은 슬로푸드 운동의 핵심이나 다름없다. 슬로푸드가 미션으로 삼고 있는 교육이나 생산자와 공동생산자(소비자)의 만남, 종자와 음식 전통의 보존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각 지역 지부의 활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로푸드 한국협회는 각 지부 회원들이 아래서부터 자발적으로 만들어온 상향식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식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슬로푸드문화원이 교육을 통해 회원을 늘리고, 그 회원들에게 지부를 권유하면서 지부가 조직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지부마다 편차가 커요. 어떤지부는 지자체와 연계하여 지역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데 반해 어떤 지부들은 회원들과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죠. 저희 사무국에서는 앞으로 지부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지부의 현안을 귀담아 듣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지부 강화, 재정 안정화, 맛의 방주 활성화
전국에 26곳의 슬로푸드 지부 조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활동 수준이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국협회는 올해 상·하반기 두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각 지부의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활동을 공유하면서 리더십 역량을 키울계획을 갖고 있다. 첫 워크숍은 오는 4월 26일~27일 이틀간 열린다.

“슬로푸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기때문에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향이 다 다를거예요. 지부로 내려가면 그 차이가 훨씬 심해져요.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 세상에서 음식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말이 음식시스템이지 여기에는 온갖 것들이 다들어 있어요. 종자 문제, 땅의 문제, 음식 문화의 문제……. 이 모두를 다루고 있으니까 지부에서는 갈피를 잡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부에 모인 분들끼리 지부의 방향을 설정해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예를 들면 GMO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1년에 한두 번이라도 GMO 반대 운동에 함께 참가하는 것을 지부 활동으로 잡는 거죠. 구체적인 내용은 각 지부의 상황에 따라, 모인 분들의 역량에 따라서 다 다르겠지요.”

고 이사는 팔당에서 슬로푸드 운동을 하다가 2009년에 경북 영양군으로 귀농한 적이 있다. 면적이 서울의 1.4배인데 반해 인구는 1만 8천 명 뿐인 곳이다. 사람 구경도 쉽지 않은 이곳에서 슬로푸드 간담회를 개최한 후, 지역 인사를 중심으로 영양 지부를 결성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려면 먼저 유대관계가 잘 되어 있어야 하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일을 도모하려니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자주 모여 친해지고 싶어도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한번 모이려면 자동차로 삼사십 분에서 한시간 거리를 달려와야 하니, ‘한 번 올 때마다 땅 한 평이 날아간다’고 농담하는 분도 있었어요. 이를 극복하려면 강력한 리더십과 명확한 비전 그리고 회원들 간의 끈끈한 유대가 필요한데, 이 모두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던 거죠. 지역의 리더를 지부장으로 내세우고 제가 실무를 맡았지만, 저의 역량도 미치지 못했고 지부장 또한 슬로푸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가 없었어요. 대도시보다 지역에서의 지부 활동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죠.”

4월말 지부 워크숍, 소식지 발행 등 소통 노력
지부 활동 못지않게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슬로푸드의 핵심 사업은 바로 ‘맛의 방주’다. 맛의 방주 지정 품목이 올 3월 현재 60개가 넘어서면서, 이제는 새로운 발굴뿐만 아니라 기존에 지정된 품목들이 확고하게 자리잡도록 활성화시켜야 할 단계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는 4월 12일 맛의 방주 생산자들이 모이는 워크숍이 열린다. 맛의 방주 지정후에 일어난 변화들을 공유하고, 해당 품목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머리를 모으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종자 보존은 박물관에 갖다놓는 것이었지요. 맛의 방주 사업은 사라져 가는 종자와 음식을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먹도록 해서 그것이 되살아나게 만드는 일이에요. 그러자면 사업이 되지 않고 지정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것이 지금까지 해오던 박물관 방식과 슬로푸드의 방식이 다른 점이지요.”

협회의 재정 안정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후원금 모금은 물론 기업회원 확보를 위한 별도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올해는 재정 사업을 목표로 하는 ‘슬로푸드사업단’이 별도의 조직으로 출범한다. 사업단이 빠른 시일 내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고 이사는 말했다.

올해 한국협회가 준비하는 또 하나의 사업은 바로 소식지 발행이다. 가벼운 분량의 책자 형식으로, 4월 중에 첫 호가 나올 예정이다. 소식지를 통해 각 지부의 동정과 협회의 활동, 국제협회 소식 등을 공유하고 재정상황도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소식지는 800여 명에 달하는 슬로푸드 회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부의 결속력 강화 및 회원 확대 등 소통의 도구로 사용될 전망이다.

고 이사는 “회원들이 우리 운동에 자부심을 가질 때 역동적인 힘이 발휘되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도 훨씬 빨리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일들은 신뢰와 소통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회원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사무국이 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