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 PDF 파일 지면 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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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학교들처럼 오후 3시에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보통 그때쯤이 배식과 청소 등 급식실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오후에 들어선 대명초등학교 급식실은 여전히 분주했다. 조리원들은 한창 바닥 청소 중이었고, 박 교사의 책상에 놓인 전화기에서는 계속 벨이 울렸다.

“저희 학교는 2회로 나누어서 배식을 해요. 교실 배식을 안 하는 것이 학교 방침인데 식당 규모는 300석밖에 안되거든요. 1,2,4학년이 4교시를 마친 12시 10분에 점심을 먹고 3,5,6학년은 5교시 끝나고 1시 10분에 먹어요. 그래서 오후 2시가 되어야 식당이 마무리되고, 다른 학교들보다 일이 좀 늦게 끝나죠.”

박 교사는 다음 주 어린이날 특식에 쓸 닭고기와 조각 케이크에 관한 업체의 전화를 받느라 인터뷰 도중 몇 차례나 자리를 떴다. 이곳 대명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지는 이제 3년이 되었지만, 20년 전 양평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 영양 교사로서 일한 경력은 20년째다. 이후 용인과 광명을 거쳐 3년 전에 부천으로 발령을 받았다.

평소 급식 못지않게 영양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박 교사는 경기도 영양교사1기로 발령받은 직후인 2008년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양 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보관하고 있던 파일첩을 꺼내와 PPT 수업 자료와 아이들이 작성한 활동지 등을 보여주었다. 요즘은 ‘자기주도 학습’이 대세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강의식 학습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모둠활동이나 로고송 부르기 등 다양한 내용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박윤옥 부천대명초등학교 영양교사

인터뷰 / 박윤옥 부천 대명초등학교 영양교사

“먹을거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교과에 비해 입체감 있는 수업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나트륨섭취 문제에 관한 수업에서는 염도계를 활용해요. 0.4% 정도로 조금 싱겁게 맞춰진 염도계를 모둠별로 나눠주고 ‘너희 입맛에 맞게 간을 한번 맞춰봐라’ 하는 거죠. 원래 염도 권장치는 0.5~0.6% 정도거든요. 저는 국 끓일 때 늘 염도를 0.6%으로 맞추죠.

근데 아이들은 보통 0.8에서 0.9% 정도로 염도를 맞춰요. 그걸로 염도를 재보고 깜짝 놀라는 거죠. ‘아 내 입맛이 짜구나’ 하고요. 그러면서 뭔가 생각을 하게 되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양수업은 학년 당 보통 일 년에 두 번이다. 물론 그 정도의 수업으로 아이들의 편식이나 식습관이 확 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생 건강의 초석이 되는 올바른 식습관에 관해 어렸을 때 한번이라도 들어봤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박 교사는 믿는다.

‘ 급식우수반’에 떡케이크 시상“광명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지병 때문에 당 수치를 조절해야 하는데 인스턴트 음식을 끊지 못해서 두세 달에 한 번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영양 수업 중에 색깔 채소의 효능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그 아이의 식습관에 변화가 생겼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병원에 가보니 당 수치가 많이 낮아져 있더라는 거죠. 그 학생 어머니가 언젠가 급식 모니터단으로 오셔서 그 얘기를 해주셨어요. 고맙다고 인사하시면서요. 그럴 때 참 보람을 느끼죠.”

지난해에는 교내에서 ‘음식물 쓰레기 남기지 않기’ 운동을 벌여 한 달에 한 번씩 매 학년마다 ‘급식우수반’을 선정해서 시상했다. 표창장과 함께 부상으로 반 아이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떡케이크를 주었다. 박 교사의 파일첩에 끼워진 사진에는 떡케이크 주변에 모여서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어려 있다.

어느 반은 담임선생님이 표창장을 학생 수대로 복사해서 모든 아이가 손에 똑같은 상장을 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명초등학교의 ‘급식우수반’ 표창은 지난해 두 곳의 지역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아이들에게 영양 교육을 하면서 얻는 보람이 커요. 그런데 행정 업무가 많아서 제 교육관을 다 펼치기가 쉽지 않아요. 영양 교사의 업무 중에 급식은 70%, 영양 교육이 30% 정도가 되면 이상적일 것 같아요. 그것이 가능하도록 행정 업무 부담이 줄고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박 교사는 전 교직원이 보는 교내 메신저도 영양 교육의 일환으로 많이 사용한다. 식중독 위험이 높은 여름에는 찬 음식보다 완전히 익힌 뜨거운 음식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설명을 메신저로 전하는 식이다. 각 학급에서 아이들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에게 우선 급식의 내용에 대해 알리고, 그 내용이 학생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단옷날에는 급식에 절기 음식인 ‘차륜병’을 내면서 음식에 대한 소개를 메신저에 띄웠다. 광명에서는 광명시 영양교사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고, 부천에 와서도 경기영양교사회 부천시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급식 정책에 관심이 많다.
 
박 교사는 지난 4월 21일 경기영양교사회와 경기도 의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토론회의 주요 안건은 ▲학교급식 인건비를 식품비에서 분리시키자는 것과 ▲2,3식 학교들에 보조영양사 인력을 위한 예산을 지원하는 문제였다.

“인건비와 식품비 분리, 2·3식 학교 보조영양사 채용 중요”, “인건비를 식품비에서 분리시키자는 제안은 최근 조리실무사들의 인건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리실무사 노조가 인원이 많고 발언권이 있는 편이거든요. 저출산으로 인해서 매해 입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조리원은 해고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수가 줄지 않아요. 급식비 내는 학생은 줄어드는데 인건비 지출은 늘어나니까 식품비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올해 저희 학교도 전체 급식비 중 식품비 비중을 76%에서 72% 가량으로 깎았어요. 친환경 급식이기 때문에 식품비가 비싼데, 그렇게 되면 식재료 준비에 부담이 크죠.”

또 하나는 대부분 석식까지 2식을 하는 고등학교 영양선생님의 업무부담 문제다. 고등학교 영양선생님들은 90% 정도가 비정규직 영양사다. 아침 7시 식재료 검수부터 시작해서 저녁 8시가 넘어서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하는 고등학교는 누구나 기피하는 근무지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다보니 학교 내 입지도 좁고, 조리원이나 업체 통솔도 어렵고, 행정업무 부담은 더 많아서 그만큼 이직률도 높다. 전반적으로 식중독 사고나 안전 사고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것도, 급식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고등학교다.

때문에 2식 이상 하는 학교는 보조영양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경기영양교사회의 주장이다. 경기영양교사회는 교육청에 해당 사업을 위한 예산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부천시 학교급식지원센터는 교육을 중점에 두고 노력을 많이 하시는 모습이 보여요. 다만 교육을 할 때 관내 영양 선생님들의 역량을 강사 인력으로 활용하려는 노력도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통은 외부에서 오신 강사가 강의를 많이 하는데, 영양선생님들도 대학원 학위에 능력이 출중한 분들이 많거든요.”

부천만의 자체 물류센터가 설립되는 것도 박 교사의 바람이다. 부천은 자체 물류센터가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100% 경기도친환경유통센터에서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수박을 요청한 지 3주째인데 매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아야 하는 요즘 같은 때가 특히 그렇다. 거대 업체 한군데서만 공급받는 방식은 식재료의 품질이나 가격, 신뢰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양이나 성남처럼 부천에도 자체 물류센터가 생겨서 식재료 선택의 폭이 좀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박 교사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