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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봐도 행복”… 함께 책 읽으며 슬로푸드 공부해요[탐방] 슬로푸드 내포 지부 (예산, 홍성)
[63호/4면/공공급식/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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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13  22: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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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PDF 파일 지면 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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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안쪽부터 박은서 씨,이명순 씨,김영숙(내포지부지회장)씨,이연숙 씨 오른쪽 안쪽부터 손정희 씨,김소연 씨,서은경(내포지부 사무국장)씨
지난 2013년 11월에 출범한 슬로푸드 내포 지부는 현재 38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매년 미각교육과 절기음식 교육을 비롯해 연 2회 열리는 ‘토종 씨앗과 모종 나눔’ 행사,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어린이 생태텃밭 요리교실’ 등 슬로푸드의 이름을 걸고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맛의 방주 사업에도 열심히 참여해, 재작년인 2014년에 예산 집장과 예산 삭힌김치 두 가지를 맛의 방주에 등재했다.

지난 5월 4일 저녁, 여덟 명의 내포지부 회원들이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을 한 권씩 들고 예산읍내에 있는 ‘협동마을 책마당’에 모였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에 열리는 독서모임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모인 사람은 김영숙 지부장을 비롯해 이달 10일‘ 매일식당’이라는 간판을 달고 문을 연삭힌김치 전문식당 주인 김형애 씨, 자연농법으로 인삼을 재배하는 ‘삶애 농장’ 박은서 씨, 오미자 농원을 운영하며 자연에 관한 노래를 지어 부르는 손정희 씨, 예산 사과와인으로 유명한 ‘은성농원’ 서은경 씨, 연잎차 전문가 김소연 씨, 농산물 유통업에 종사하는 이명순 회원, 퇴직 교사인 이연숙 회원 등이다. <임은경 기자>

저녁 7시에 시작된 독서모임은 9시경에 끝났다. 책이 두꺼운 편이라 세 차례에 나누어 읽고 있는데 이날 모임은 2회 차다. 발제자는 따로 없고, 본인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과 느낀 점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쑥스러워하거나 주저하는 기색 없이 저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분위기가 꽤나 진지했다.

12장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낭독한 이명순 회원은 “‘소비자의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제인 구달의 얘기를 읽으면서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타협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며 “내가 알게 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도 많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은서 농부는 “옛날에는 먹는 시간 외에는 풍류를 즐기거나 교양을 닦는 등 정신 수양을 중시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여가시간도 온통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데 보낸다”고 지적하며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면 좀 덜 먹게 되고, 폭식으로 인한 질병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모임은 자연 재료로 만든 ‘ 희망의 밥상’ 차리기
서울에서 하던 미용사 일을 그만두고 귀농한 김소연 씨는 “요즘에는 서울에 가서 멋지게 차려진 밥상을 보면 ‘과연 이중에 제대로 된 음식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서 허탈하다”며 “요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이것저것 많이 집어넣어서 맛이 포장되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소박한 자연 재료에 최소한의 양념으로 내가 집에서 해먹는 음식이 훨씬 귀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 음식에 익숙하다가 바깥 음식을 먹으면 몸에 탈이 난다”고 말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간간이 계속 웃음이 터졌다. 이날 조금 늦게 참석한 손정희 회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만든 노래를 들려주겠다’며 오카리나를 꺼내들었다. 제목은 「오미자 밭고랑에 부는 바람」. 은은한 오카리나 선율이 봄밤의 정취에 녹아들었다.

흥이 오르자 그는 올해 초 만든 「냉이 노래」도 사연과 함께 들려주었다. 암 투병 중인 수녀님께 드리기 위해 냉이에게 ‘혹독한 겨울을 나는 비법’을 물었고, 냉이와 나눈 대화를 노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손 회원은 봄이 되면 지천으로 피는 들꽃을 따서 꽃밥을 만든다. SNS 등을 통해 친구들을 초대했고, 올해 봄에는 10여 명이 손 씨의 농장을 방문해 꽃밥을 먹었다. 야생구기자를 따서 양념을 하고, 소리쟁이를 뜯어 된장국을 끓이고, 등나무꽃을 따서 피클을 담는다.

지천으로 돋아난 명아주와 풍년초(개망초)도 훌륭한 반찬거리다. 서은경 회원은 “우리는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게 아니면 음식이라는 생각을 잘 못한다. 진열대에 있는 호박, 양파, 감자 정도가 먹는 것의 전부”라면서 자연에서 식재료를 찾아보는 시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이 난 김에 다음 달 독서모임은 각자 반찬을 한 가지씩 가져와서 식사모임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서은경 씨가 “기왕이면 슈퍼에서 팔지 않는 재료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박은서 농부가 “그럼 저희 밭으로 오시라. 풍년초, 꼬리뱅이 등 먹을 수 있는 온갖 풀이 가득하다”고 맞받았다. 『희망의 밥상』에 나오는 내용처럼 채식 위주의 밥상을 차리기로 한 것이다. 내포지부 총무를 맡고 있는 이연숙 회원은 집(장소)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농사를 20년 지었지만 ‘농사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손정희회원은 이날 마침 생협에 납품한 노지 쪽파가 ‘생김새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10일 만에 모조리 반품이 들어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우스에서 키운 쪽파는 색이 파랗고 보기도 좋다.

하지만 진짜 자연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은 노지 쪽파다. 그는 “슬로푸드는 농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농민을 대접해준다. 슬로푸드에서 말하는 ‘공동생산자(소비자)’가 없으면 농사를 계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도시에서 20가구만 모여도 한 농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무리하지 않고 한걸음씩…농민과 소비자 만나는 장터 꿈꿔
내포지부 독서모임에서 지금까지 읽은 책은 김종덕 한국협회장이 쓴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와 맛의 방주에 관한 자료집, 프레지디아 자료 등 슬로푸드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교재가 대부분이다. 김영숙 지부장은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한걸음씩 가자는 것이 내포지부의 운영 철학”이라고 말했다.

“저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농민운동과 시민운동을 하면서 사명감이라는 무게 때문에 힘들었어요. 슬로푸드를 만났을 때 ‘아, 이거라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농민의 생산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연결시켜 준다는 슬로푸드 철학에 깊이 공감했어요.”

이후 예산에서 기존에 알던 인맥들 중에서 함께 하면 좋겠다 싶은 분들에게 회원 가입을 제안했다. 한 사람도 거절하는 이가 없었다. 홍성은 지부 부회장인 손정희 회원을 중심으로 회원이 모였다. 독서모임을 주축으로 활동하는 주요 멤버들은 무슨 일을 제안해도 내 일처럼 따라오는 든든한 동지들이다. “서로 얼굴만 봐도 행복하다”는 이연숙 회원의 말은 지부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자연스레 짐작케 한다.

올해부터는 건강한 먹거리를 찾아 떠나는 답사 프로그램을 시작할 계획이다. 먹거리와 문화가 만나는 답사를 통해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그들이 슬로푸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어린이 생태텃밭 요리교실’에서는 5월에 논산 오계 농장을 방문하는 등 이미 답사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이를 슬로푸드 회원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더 장기적인 계획은 우리 회원들의 생산물을 들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장터를 여는 것”이라고 김 지부장은 말했다. 지역의 좋은 생산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 계획대로 향후 슬로푸드 내포지부가 주최하는 장터가 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는 슬로푸드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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