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 PDF 파일 지면 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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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안성친환경학교급식출하회 회장

“양파가 올해는 보름정도 일찍 쓰러졌어요. 작년에는 7월 1일에 수확을 했는데 올해는 6월 15일이면 수확을 해야 해요. 15일을 더 당겨서 캐면 그만큼 덜 크니 손해지요” 얼핏 봐서도 대분분이 180g을 넘어 상품으로 보이는데 김 회장은 아직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이다. 친환경농민은 항상 직업병처럼 가만히 인터뷰만 응하지 않는다. 밭을 돌아 볼 때면여지없이 허리를 숙여 풀을 뽑으면서 간다. 거미줄만 쳐도 크는 모습이 다르다면서 나무 그늘에 살짝 가린 모퉁이 양파밭 성장세가 못내 아쉬운가 보다.

김 회장은 친환경농산물이 비싸다는 ‘ㅂ’자만 들어도 열불이 난다. 새벽 4~5시부터 밤 8~9시까지 밭에서 긍긍메는데 도시말로 최저시급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환경농민들 소득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나이 대에 맞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꿈꾸는 노후다. 양파밭과 감자밭, 생강하우스를 돌아 햇빛 좋은 김 회장의 집앞 길거리에 앉았다. 5월 30일 그렇게 길거리 인터뷰는 깊어가고 있었다. <한기자 기자, 사진=김영찬 기자>

농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출생지는 충북 괴산이다. 10살에 안성에 왔다. 집이 가난해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어 고등학교를 들어가 보겠다고 결심하고 아버지따라 담배농사를 시작했다. 17살짜리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담배잎 출하를 해 주던엽연초 조합기사들이 뜻이 갸륵하다며 담배 신품종을 가져다 주었다.

심었는데 아주 잘 됐다. 그런데 바람이 한번 불으니까 이파리가 다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첫 번째 농사는 망하다시피 했다. 다시 담배농사가 절단 난 그 자리에 김장배추를 심었다. 배추는 아주 잘 됐다. 그런데 이번엔 배추값이 똥값이었다.

그해 눈이 엄청 왔었다. 삽으로 그 눈을 다 치워가며 구덩이를 파고 만포기의 배추를 저장했다. 다음해 봄에 배추값이 금값으로 오른 것을 보고 금의환향하는 기분으로 구덩이를 들춰
배추를 꺼냈다. 그런데 그 놈의 생쥐들이 배추속의 고갱이를 모두 쏙쏙 빼 먹어 버린 후였다. 고갱이 빠진배추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제 2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누나가 안되겠다며 고등학교를 입학시켜줬다. 고등학교 1학년을 6개월 다녔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당시 집이 없어 직접 집을 짓다가 스레트를 나르던 리어카에 치어 척추를 다쳤다. 하반신 마비였다. 병원에서는 휠체어를 타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걷지 못한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눕거나 엎드린채로 링거줄을 이용해 열쇠고리, 십자가, 꽃바구니 등을 떠서 주위사람에게 선물로 주며 병원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나면서 불안감이 찾아왔다. 다리는 감각이 없고 가늘어져 갔다. 도르래를 천장에 매달고 압박붕대를 꽈서 다리를 걸고 남들 잘 때 운동을 시작했다. 손의 힘으로 감각이 없는 다리를 쉴 새 없이 들어올렸다. 그렇게 4개월을 보낸 후 손으로 벽은 짚었지만 발로 걸어서 병원문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의사, 간호사, 엑스레이 기사 등 주변사람들이 모두다 울었다.
 
공무원합격도 포기하고 왜 농사를 계속 지었나?
아버지 빚 때문에 당시 공무원 월급으로는 이자내기도 어려웠다. 좀 더 월급이 많은 태평양 화장품에 취직을 했지만 또 그만두었다. 농사가 적성에 맞는 거 같았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로 맘을 먹고 4H에 들어가 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소도 키워보고 소 장사도 하셨다면서요?
아버지 연체 때문에 못준다는 농협 대출자금 200만원을 농협직원을 패대기치면서까지 받았는데 1년 농사를 져보니 갚을 수가 없었다. 다시 떼를 써 빚을 연장시키고 그 돈으로 젖소 초유떼기를 했다. 목장을 하는 동네 형이 새끼송아지를 갖다 주면 분유를 먹여 중송아지가 되기전에 파는 것이었다. 1년 되니까 송아지가 한 마리씩 늘어30마리가 됐다. 집 앞마당만 남겨놓고 빙 둘러 송아지로 채웠다.|

더 이상 송아지를 키울데가 없어 송아지에 투자하던 돈으로 논을 샀다. 소 매매도 해보자고 해서 4명의 친구들과 사무실도 차렸다. 그러나 6개월만에 출자금을 다 털어먹고 혼자 남았다. 97년 IMF때 소를 다 팔아버렸으니 10년 소 장사를 한 것이다. 

친환경농사는 어떻게 짓게 됐나?
35살에 대학을 가면서 수학강사도 하고 학원도 경영하게 되었다. 학생수가 많을 때는 350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밭농사는 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논농사만 했다. 친환경도 아니었다.

2004년 집을 새로 지으면서 업자와 4년 소송에 휘말렸다. 구석쟁이 논을 한뙈기 한뙈기 사서 재차 논을 한 곳으로 모으기까지 정말 고생했는데 결국 벌판같은 논을 팔아야만 했다. 2008년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학원경영도 집어 쳤다. 그때 당시는 그게 우울증인 줄 몰랐다. 그러다가 2011년 안성친농연 이동옥 현 회장의 권유로 친환경급식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친환경 인증받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고 학교급식이란 것도 생소했다. 그런데 이 회장을 보고 뭔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 회장은 차도 없이 택시타고 다니면서 농가들의 친환경인증을 도와주고 다녔다.

지금 농사규모와 품목은?
출하회원으로 가입하고 처음으로 감자 2천평을 배정받았다. 첫해 수입이 1900만원. 지금은 5천평 노지에 감자, 양파를 심었다. 올해는 하우스를 짓고 생강농사도 시도중이다.

안성출하회는 감자, 양파가 주종인데 연작피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양파를 같은 자리에 심으면 한해만 지나도 수확량이 떨어진다. 그래서 생강을 시작했는데 생강도 연작이 심하다고 해서 걱정이다. 매일 한달 동안을 전화로 졸라서 겨우 생강기술을 배워왔다.

일꾼들을 서산까지 데리고 가서 종강을 직접 같이 짤라 왔다. 알고 보니 핵심은 원강을 붙여서 종강을 만드는 것이었다. 경기친농연에서 38톤을 물량배정 받아 500평을 심었다. 안성친환경학교급식출하회는 만평정도를 심었다. 녹두, 검정콩, 잡곡도 안성이 80%는 배정받아왔다.

안성에는 출하회가 왜 여러개인가?
일죽출하회, 고삼출하회, 수도작잡곡출하회, 안성출하회 해서 4개다. 원래는 하나였다. 안성이 감자를 많이 배정받았다. 우리는 kg당 2천원을 요구했다. 그런데 조공소속 조합장들이 난리가 났다.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그럼 경기농림진흥재단, 교육청, 조공 등도 생산단가를 뽑아보라고 했더니 결국 우리가 제시한 kg당 2천원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도 조합장들이 반대를 하면서 일죽과 고삼지역이 떨어져 나가 싼 가격으로 조공과 계약을 해 버렸다.

농협 정산수수료를 0.5%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나?
2013년까지 죽산농협이 정산농협이었는데 출하수수료를 5%나 떼 갔다. 일반 농산물 출하할때의 출하수수료도 0.5%인데 왜 이렇게 책정됐었는지 모르겠다. 우선 3%로 낮추고 죽산농협을 계속 이용했다. 그런데 냉장시설 지원자금 문제로 또다시 부딪혔다. 7천만원 무이자 지원을 요청했더니 죽산조합장이 삼죽조합원이 포함돼 있어 지원을 못한다며 반발했다.

이 과정에 정산농협을 삼죽농협으로 바꾸면서 수수료도 1%로 내렸다. 출하회 농민들은 수수료를 내리면서 미안해 했다. 조합이 어렵다는데 이래도 되는지 망설였다. 지금도 나는 0.5%로 수수료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원 버는 놈이 1000원 버는 놈을 걱정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본다.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시간을 따지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게 친환경농민들이다. 그렇게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를 일만 하며 살아온 게 우리들이다. 이제 노후는 그 나이대에 맞게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