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천 안성잡곡쌀출하회 회장

추석이 지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한낮은 뜨겁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너른 들판엔 누렇게 고개숙인 벼 이삭들로 완연한 가을풍경이다. 이번 호 주인공은 안성시 고삼면에서 친환경농업작목반을 운영하면서 경기친농연 안성잡곡쌀출하회를 이끌고 있는 이경천 회장(66). 이 회장을 찾아간 날은 마침 출하회 회원 교육이 있는 날.

고삼농협 2층 대회의실로 이 회장을 찾아갔다. 안성 수도작잡곡출하회 안전성 교육장에 모인 40여명 출하회 회원들은 진지한 자세로 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단상에 오른 이경천 회장이 인사말을 시작했다.

"올해는 유례없는 가뭄과 폭염이 계속됐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대 풍년입니다. 그러나 풍년이라해도 지금 상황은 끝 모르게 떨어지는 쌀값으로 즐겁다기보다 걱정스런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오늘 모인 우리 출하회 회원들은 그나마 학교급식 계약 재배로 판로가 안정적이어서 다행입니다. 마침 얼마 전 찰벼와 흑미에 대한 수매가를 그런대로 좋은 조건으로 결정했습니다.
올해 처음 계약 재배한 찰벼와 흑미는 1인당 10톤 이하로 계약 쿼터가 적어 아쉬웠지만 수매가가 예상 외로 좋은 조건이어서 내년에 거는 희망이 큽니다. 더욱이 내년도에는 친환경 전문 도정시설 마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지만 다부진 몸매의 이회장의 표정과 말씨에 자신감이 넘친다. 이 회장이 밝힌 수매가는 찰벼 40kg에 8만4500원, 흑미 40kg에 11만원. 고삼친환경농업작목회는 전 회원이 모이는 연시 연말 총회 외에 수시로 작목반 별로 회원을 모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 계약재배에 참여한 회원은 찰벼 35명, 흑미 10명이다. 출하회 회원들은 평당 2kg을 생산하는 조건으로 많게는 1만평까지 친환경 잡곡을 재배했다. <김종훈 기자>

- 어떻게 학교급식에 잡곡을 계약재배하게 됐나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경기도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친환경 잡곡을 1,210톤 확보했습니다. 그 가운데 안성시에 찰벼 150톤과 흑미 50톤이 배정됐지요. 우리 회원들이 계약된 잡곡을 생산하면 공급업체로 지정된 ‘신선미’에서 잔류농약 검사 등을 마친 뒤 학교에 납품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 그렇다면 잡곡 외 친환경 일반 벼의 판로는 어떻게 되나
"고삼친환경농업작목회에는 친환경수도작에 유기농 53명, 무농약 64명과 감자, 양파, 연근, 생강 등 채소작목반에 57명 해서 총 174명이 회원으로 있습니다. 무농약 쌀과 채소는 전량 경기친농연을 통해 학교급식에 들어가고 있고, 유기농 쌀은 총 생산량 200톤 중 150톤은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고 나머지 50톤은 고삼농협이 수매하고 있습니다. 농업은 풍년이든 흉년이든 항상 판로가 걱정입니다. 하지만 우리 작목회는 판로에 걱정이 없습니다.

더욱이 올해부터 잡곡은 학교급식에 계약재배를 하고 있어 희망이 큽니다. 요즈음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정부가 처음에는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지금은 시들해지고 지원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 계약재배 아니면 희망이 없습니다. 앞으로 고등학교 급식까지 확대된다면 친환경 농업 농민들은 한결 시름을 덜 수 있습니다.”

-  친환경 농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례로 친환경 농업을 하려면 매년 잔류농약검사 등 친환경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작목회 같은 경우 인증받는 데만 연간 비용이 3천만원 정도 듭니다. 잔류농약검사의 경우 건당 22만원이나 듭니다. 전에는 시·도등 정부보조금이 60% 나와 자부담이 40%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거꾸로 돼서 자부담이 60%에 이르러 많은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전에는 2년에 1번만 인증받으면 됐는데 지금은 매년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친환경 농업에는 유기농과 무농약 농업이 있다. 두 방법 모두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유기농은 화학비료마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농업 방식이다. 무농약 농업의 경우 화학비료를 3분의 1 이하로 사용해야 인정을 받는다. 당연히 무농약보다 유기농 쌀의 가격이 높다. 올해 고삼작목회의 무농약 쌀의 수매가는 40kg에 8만원. 유기농은 1만원 정도 더 비싸다.

- 친환경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안성에서 나고 자란 이경천 회장. 이회장은 농사를 짓던 부모님을 대신해 군대에서 제대한 뒤 농삿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논에 농약을 살포했다가 농약에 중독되는 사고를 겪게 된 이 회장. 그 이후로는 농약이 겁나 친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4년일 거예요. 이웃 청년들 10명이 뜻을 같이 하기로 하고 700평 논에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 실패했지요. 제대로 소출이 나기 시작한 건 3년 정도 지난 후입니다. 친환경 농업은 힘들고 소출이 적지만 일반 관행 농업에 비해 가격이 높지요. 처음부터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는 유기농으로 벼를 재배했는데 이번에 학교급식 출하를 위해 계약재배를 하느라 무농약으로 바꿨습니다.”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농산물은 유기농이 아닌 무농약
올해 처음 학교급식에 계약재배를 시작한 잡곡 생산을 위해 유기농에서 무농약을 바꾼 것.

“수매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성시에 배정된 잡곡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의 수가 적었습니다. 우리 임원진들부터 솔선해서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수매가가 예상 외로 높아 내년에는 잡곡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배정 물량도 따라서 많아지면 좋겠지만 물량보다 참여를 희망하는 농민이 많다고 해도 우리 작목회에서는 추첨을 통해서라도 공정하게 배정하려고 합니다. 작목회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농민에게는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심사에 통과하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쉬운 농사 대신 손 많이 가고 귀찮은 친환경 농업에 종사하며 학교급식 계약재배까지 쉼 없이 달려 온 이 회장. 이 회장의 바람은 무엇일까.

“우리 작목회 회원들 가운데 제가 젊은층에 속합니다. 80이 넘은 고령층도 꽤 있습니다. 후계자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농업 현실에서 농업에 뛰어들 젊은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판로 걱정 없는 친환경 농업이 있기에 희망은 있습니다. 고생되고 소출은 적지만 제가 나아갈 길은 친환경 뿐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잡곡과 채소류 외에 친환경과 일반 쌀까지 고등학교 급식에 계약재배가 확대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