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에 으뜸가는 과일은 포도.

우리나라에서 포도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화성 송산포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 송산포도는 서해안의 풍부한 일조량과 바닷바람 덕에 달콤하고 향긋한 맛을 자랑하고 있다.

 

화성 송산에서 한 평생 포도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다 친환경 농업인들의 판로 확대와 복리 증진을 위해 화성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이하 화성친농연)를 설립, 초대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용 회장(79)을 만나봤다.

이 회장을 만난 곳은 송산면 사강리에 소재한 화성친농연 사무실. 이 회장은 포도수확을 위해 바쁜 한 철을 보낸 뒤 사무실에 나와 회원들의 피땀이 어린 포도의 판로 확대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김종훈 기자, 김영찬 기자>

 

“화성 송산에서 포도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0년도부턴데 이곳 토양은 사질양토라 물이 잘 빠지고 찰기가 있어 무얼 심든지 다 잘 돼. 당시 한두 사람이 포도를 심었는데 바다에 면한 곳이라 일교차가 커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아 소문이 나기 시작했지. 그 뒤 너도나도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해서 이 일대 거의 전부가 포도밭이 된 거야.”

 

“화성에서 나고 자랐어. 학교 졸업하고 1971년에 송산농협에 들어가 조합장까지 하고 퇴임한 게 2001년이야. 꼬박 30년을 근무했지. 농협에 다니면서도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포도밭에 나가 일하고 퇴근도 포도밭으로 했지. 송산포도가 맛있긴 하지만 자식에게 먹이고, 후손에게 또 국민에게 먹일 포도를 어떻게 농약 뿌린 거 줄 수가 있나 마음이 답답했어. 그리고 앞으로 우리 농업이 살 길은 친환경뿐이다 생각했지. 그러다 10년 전에 그러니까 2005년에 뜻이 맞는 사람들 12명하고 친환경으로 농사짓자 하고 시작했어. 처음엔 고생많았지. 친환경으로 한다고는 했는데 배울 데가 없는 거지. 친환경으로 고추농사 짓는 데 갔더니 목초액을 발효시켜 해충을 방제하고 있더라고. 그래 목초액을 가져다가 6개월 발효시켜서 포도나무에 뿌렸더니 온통 시커매지고 해충은 죽지도 않고 말도 마.”

 

나이를 묻자 이 회장은 ‘나이 물어보면 남부끄러워’하며 손을 내젓는다. 옆에 앉아 있던 부회장이 올해 79세라고 말해준다. 팔순이라 말해주기 전에는 몰라볼 정도로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 지난 세월을 이야기 하는 이 회장의 친환경 포도농사를 위한 고생담은 끝이 없다.

이렇게 공들인 친환경 포도. 그러나 친환경 포도라 해서 비싸게 팔리지도 않는다.

“소비자에게 직거래를 하면 일반 농약을 뿌린 포도보다 비싸게 팔 수 있겠지. 그러나 여기는 가락동 도매시장 같은 도매상에게 포도를 내는데 물론 친환경 인증 마크를 상자에 붙여 내지만 도매상들은 일반 포도나 친환경 포도나 구분하지 않고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에 차이가 없어. 그런데 자기들이 소매로 팔 땐 친환경 포도라 해서 일반 포도보다 두 배 이상 받더라고.”

 

송산에서 출하되는 친환경 포도가 제대로 팔리는 곳은 경기친농연을 통해 경기도 학교급식에 납품되는 수량뿐.

“처음에 12명이 시작한 친환경 송산포도가 지금은 회원이 80명이야. 그 중 친환경 농약도 쓰지 않는 유기농가가 14곳인데, 유기농 포도만 학교급식에 납품되고 있지. 하지만 물량은 얼마 안 돼. 작년에는 총 2만 7000kg 1억7천만원 정도 납품됐어”

이 회장은 회장으로서 판로개척을 못한 것 같아 속이 타들어간다고 했다.

“도매상에 친환경 포도는 일반 포도와 달리 따로 상정해 달라고 했지만 들어주지 않더라고. 학교급식도 학생 한 명에게 포도 한 송이씩 주는 것도 아니고 몇 알씩만 주더라고. 그러니 힘들지. 인구가 많은 서울 같은 대도시 학교에 납품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막말로 촌놈이 납품할 수 있는 곳을 알 수가 있나. 회원들은 판로를 개척해달라고 독촉하지만. 속만 타들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면 서울 학교에서는 냉동과일만 쓴다고 하더라고. 제도적으로 납품을 중개해주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었으면 좋겠어.”

 

이 회장은 친환경 포도의 판로 확대를 위해서는 포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판단하고 화성시 내 친환경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들을 모아 화성친환경농업인연합회를 발족시켰다.

“연합회 발족은 얼마 안 돼. 지난 7월 20일 발족했지. 포도농가 80명에다가 쌀, 토마토, 감자와 양파 등 채소농가 50명해서 130명 회원으로 시작했어. 이전부터 학교급식 납품을 위해 여러 품목의 농가가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해 연합회 설립 논의가 있었는데 사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니 연락처 모으기도 힘들더라고. 지금 연합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영석 국장이 애를 썼지. ”

아직까지 연합회 구성이 얼마 안 됐고 첫 단계라 큰 활동은 없지만 현재 20~30% 밖에 못파는 급식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 회장.

 

“내 희망? 힘 있을 때까지 농사짓는 게 꿈이야. 그거 말고? 하나 있지. 친환경 포도를 서울같은 대도시 학교급식에 납품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는 거야. 회장 임기를 마치기 전 그건 꼭 하고 싶어.”

“더욱 큰 문제는 아직도 친환경 식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거야. 유전자변형 작물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곳이 우리나라야. 그렇지만 정부에서는 공개도 안 해. 곡식이 모자란다면 이해해. 지금은 곡식이 남아돌아 관리비만 한 해에 수십억을 쓰고 있는데 나라에서는 유전자변형 작물을 권장하고 있다니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좋고 건강한 친환경 작물을 먹어야 하는데 말을 안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