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과 차가운 날씨로 주인을 잃었던 학교 운동장이 학생들에게 개방되는 날. 여전한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친구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씩씩한 아이들의 뜀박질을 보자니 ‘저리 좋을까’하는 엄마 웃음이 나오게 된다.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잡은 초림초등학교 아이들의 점심을 책임지는 김성희 영양교사 역시 그런 엄마의 미소, 엄마의 마음으로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들고, 올바른 먹거리를 위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김종훈, 김영찬 기자>

▲ 김성희 성남 초림초등학교 영양교사

아침을 거르는 아이들
“분당이라고 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넉넉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학부모들의 학력도 높아 맞벌이하는 가정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없고, 아이들의 아침밥도 챙겨주지 못하는 거죠.”

김성희 교사는 아이들이 아침을 거르는 것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횟수도 많지 않다며 걱정했다. 지난해 통계자료를 보면 23.7%의 학생(3~6학년)들이 아침을 거른다고 응답했다. 아이들의 일과를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으로 향한다.

밤 11시까지 학원숙제를 하고 잠을 자면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입맛조차 없어 결국 아침을 거르게 된다. 물질적 풍요에도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한창 활동이 필요할 나이임에도 밖에 나가 햇볕을 쬐고 땀 흘리며 뛰어다닐 시간도 없다.

작고 움츠린 아이들이 많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도 많지 않다보니 흔한 ‘밥상머리’ 교육도 없다. 올바른 식습관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다.

“바쁘다 보니 대부분의 부모들이 학교에다 많은 것을 기대하고 바라죠. 하지만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집안에서는 학부모가 아닌 부모로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라고 김성희 교사는 말한다.

먹는 것은 사람을 기르는 것
먹거리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다. 김성희 교사 역시 아이들의 좋은 먹거리 습관을 위해 공부하고 실천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편식하지 않도록 애를 쓴다. 급식시간에 교실을 순회하면서 골고루 먹고, 남기지 않도록 지도한다.

김성희 교사는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직접 묻기도 한다. 또한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흥미를 가지고 음식을 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초록색 채소라고는 시금치 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쑥갓에 대해 설명을 하고 먹을 수 있도록 흥미를 유발한다. “지금 먹지 않으면 10년 후에 쑥갓이 식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요”라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실재 아이들의 편식은 눈여겨봐야 한다.

초림초등학교에서 지난해 실시한 학교급식만족도 설문조사를 보면 급식에 자주 나오면 좋겠다는 재료로 육류(53.7%)를 선택한 반면 야채는 2.3%, 생선은 4.0%로 큰 차이를 보였다.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좋아하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게 조리해서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김성희 교사는 말했다. 조리방법도 신경을 쓴다.

설탕 대신 과일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만들고,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다.

한편, 편식을 하지 않는 것만큼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남기지 않고 다 먹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보여주며 칭찬한다. “우리 학교는 교실 배식을 하는데 담임교사의 지도에 따라 잔반양이 달라져요. 급식반찬으로 파래김자반이 나오면 어떤 선생님들은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시더라구요. 평소 못보던 음식이니 아이들은 남기지 않고 다 먹어요. 선생님의 의지와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변하죠.”

학교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집에서도 같은 교육이 연장될 수 있도록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 급식 모니터링을 하러 오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들과 같이 식사하기, 재래시장 돌아보기, 농촌체험 참가하기, 운동갈 때 방울토마토와 오이 챙기기 등 식습관 개선을 위한 팁을 전수하기도 한다.

아직은 힘든 영양교사의 길
현재 각 학교마다 영양교사는 1명이다. 이 인원으로 급식과 교육을 담당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급식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부분과 조리부분을 구분해 영양교사가 2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김성희 교사는 말했다. 수업과 조리를 병행하다보니 늘 시간에 쫓긴다. 인력도 부족해서 조리원이 병가를 낼 경우 대체인력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게 힘든데도 아직까지 영양교사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개선 문제는 아쉽기만 하다.

김성희 교사는 급식시간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이 왜 무상으로 밥을 먹는지 아니? 너희들이 우리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낸 세금으로 너희들이 밥을 먹는거야. 그러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예민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무상급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급식비에서 인건비와 식재료비가 구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영양교사는 2003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사랑이 담긴 좋은 음식을 먹게끔 하고 싶단다. ‘사랑과 친절이 아니면 가게문을 열지 말라’는 유태인의 속담처럼 정성과 사랑을 쏟으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그런 그에게 아이들의 감사인사는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자 보람이다. 언젠가는 교실로 초대해서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단다. 사무실 한켠에 붙여놓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 지난해 1학년4반 아이들이 마음을 모아 편지를 썼단다.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그 편지의 대부분은 ‘밥 남기지 않고 먹을게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골고루 잘 먹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김성희 교사가 좋은 식습관을 위해 아이들에게 해 주는 말, 그대로였다. “너무 기쁜 선물이었다”고 말하는 김성희 교사의 얼굴은 여전히 엄마미소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