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석찬 화성한과 대표 /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 회장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화성한과는 떡, 조청, 약과 등 쌀을 이용한 전통식품 제조업으로 유명한 회사다. 1991년부터 한살림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으니 역사가 녹록치 않다. 생산 원칙은 ‘반드시 우리 농산물, 가능하면 친환경을 쓴다’는 것. 생산품 대다수가 유기농산물을 99% 가까이 사용하는 것도 친환경 우리 농업을 살리겠다는 회사의 오랜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젊은 시절 농사를 짓다가 농약 중독으로 일주일을 쓰러진 뒤 한살림을 알게 됐죠.”  강석찬 화성한과 대표는 “당시 남아도는 쌀을 소진시킬 방법을 찾던 한살림과 뜻이 맞아 쌀 가공품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성한과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가내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업체로 시작했던 화성한과는 이제 직원 70명, 연 매출 69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농산물가공은 보통 ‘제조를 통한 부가가치 상승으로 농가 소득을 높인다’는 개념으로만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저나 친환경가공생산자협회 회원사들은 ‘농산물 가공도 농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쌀을 제외하고는 1차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직접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잡곡의 경우는 7~80%를 가공 산업에서 소비한다. 이 정도면 농산물 가공이 우리 농업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어찌 보면 가공 산업에 달려 있어요. 1차 생산물보다는 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는 세상이니까요. 현재 한살림 쌀 생산량의 약 15%를 화성한과에서 소비해요. 한살림의 쌀 생산자가 2천 농가니까 화성한과가 약 3백 농가의 농업 지속성을 보장해주고 있는 셈이죠.”

인터뷰는 6월 3일 토요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 화성한과 직원 휴게실에서 진행했다. 휴일이라 공장이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임은경 기자>
 

농산물 가공, 농업 지속가능성 떠받치는 기둥
친환경 농사 짓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친환경 가공도 쉽지 않은 길이다. 남보다 비싼 원료를 쓰는데다, 친환경 농업 자체가 적기 때문에 원료 수급이 원활치 않을 때가 많다. 보통은 연 매출 10억 미만으로 사업 규모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친환경 우리 농업을 살리겠다는 신념으로 버티는 곳이 대부분이다.

“친환경 농업 육성법이 최근 들어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으로 바뀌었어요. 친환경농업은 ‘육성’인데, 유기가공식품은 ‘관리’하겠다는 거죠. 소비자의 시각에서만 바라본 거예요. 키워주겠다는 것보다, 이거 안전하게 제대로 만들었는지 검증하겠다는 사고죠.”

“국산 친환경 농산물을 쓰는 가공생산자들에게 지원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자리를 잡는 것이 곧 우리 농업 살리기와도 연결되는 건데 참 안타깝죠. 그런 이면에는 우리를 ‘농민이 생산한 거 가지고 돈 버는 사람’이라는, ‘업자’라고 보는 시각이 좀 있어요. 가공도 농업이라는 것, 우리 농업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인식이 아직 부족한 거죠.”

제대로 된 지원 하나 없이 ‘각자도생’의 길을 가는 친환경가공생산자들을 위해 2007년에 결성한 것이 사단법인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정부 건의 활동을 했는데, 그 첫 결실인 ‘무농약가공식품’ 인증이 올해 말에 나올 예정이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 육성법에 보면 1차 농산물은 관행, 무농약, 유기농산물 등급이 있는데, 가공품은 유기가공식품 인증만 있어요. 무농약농산물 가공식품은 인증이 따로 없기 때문에 그동안은 일반가공식품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무농약 농사를 어렵게 지었는데 정작 가공품 원료로 쓰일 때는 인증을 안 해주면 고생한 보람이 없다. 강 대표의 말처럼, 원료의 반 이상이 가공품으로 소비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가공 생산자 입장에서는 무농약 원료를 써도 표기를 못하게 되니, 좋은 재료를 써도 제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는 ‘무농약가공식품’ 인증이 어렵게 친환경 농업의 가치를 지키려는 가공생산자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익’보다는 ‘공익’을 실천하며 가는 길
“우리는 생협 소비자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 다품목 소량 생산을 하거든요. 하루에도 생산 라인을 계속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더 어렵고 효율이 떨어지지만, 생협 운동을 함께 하는 취지에서 그렇게 해왔어요. 그런데 최근에 해썹(HACCP)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게 문제가 됐어요.”

정해진 공간 안에서 한 가지씩만 생산하도록 구분지은 해썹 때문에, 생산라인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기존 공장 뒤편에 500평 규모의 떡 공장을 새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존 공장도 모두 새로 리모델링을 했고, 관련 실험 시설과 추가 인력 투입까지 약 20억 원의 투자를 했다.

“이렇게 투자를 해서 해썹 인증을 받으면 이걸 광고해서 매출을 늘리라는 것이 정부 측 홍보내용이에요. 하지만 저희는 전량 생협 납품을 하기 때문에, 해썹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매출이 더 늘어나는 것은 없어요. 그래도 해썹 인증이 가공 생산을 하기 위한 의무 조항이 되었기 때문에 받을 수밖에 없었죠.”
업체들 사이에서는 이 해썹 인증제도 때문에 ‘잘못하면 망한다’는 말이 돌 정도라고 한다. 수익 창출은 불분명한데, 업체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화성한과도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면 매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업체 특성상 기존 시장 진출도 어렵기 때문에 향후 공공급식 분야로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 

“영양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당연히 아이들 먹이는 것은 친환경 급식으로 하고 싶다고 말해요. 그런데 친환경 급식 보조금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영양사 한 분은 아이들에게 꼭 먹이고 싶은 품목 하나를 위해서 일주일 식단을 조절한대요. 예를 들면 100원짜리 먹일 것을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90원짜리로 맞추고, 금요일에 150원짜리를 구매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친환경 급식 보조금 지원을 정책적으로 늘려야지요.”

장기적인 안목으로 친환경 농업 생산지를 늘려나가는 등, 친환경 학교급식은 친환경 농업 육성과 함께 가야지 급식만 따로 떼어 얘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 대표는 말했다. 조청을 담는 유리병 하나도 비효율을 감당하면서 재사용 병을 쓰는 등, 화성한과는 오늘도 수익보다는 공익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농업의 또다른 이름은 농산물 가공’이라는 그의 말이 참 고맙고도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