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미 광명북고등학교 영양교사

1970년대에 태어난 기자는 학교급식에 대한 경험이 없다. 늘 도시락을 들고 다녔던 기자에게 급식은 수련회에서 먹었던 카레라이스의 악몽뿐이다. 찐 밥, 멀건 카레, 콩나물 몇 줄거리 떠다니던 국, 반찬이라고는 깍두기 두 개와 단무지 두 개가 전부였다. 지금 기준으로는 지탄받아 마땅할, SNS에 최악의 급식이라고 소문날 정도의 밥상이었다.

기자와는 반대로 광명북고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서 고작 두 끼 만에 이구동성으로 “빨리 학교가서 급식먹고 싶어요!”라고 했단다. 지역의 특색있고 소문난 음식보다 학교급식이 더 좋다는 아이들. 구성원의 94%가 만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 “우리학교 급식이 짱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광명북고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책임지는 김정미 영양교사(45)와의 만남은 그래서 더 설레고 기대감을 갖게 했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시간의 조리실은 정리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유경 기자>

김정미 교사는 대학에서 식품영양을 전공했다. 당시 학교 추천으로 선배와 함께 모 기업에 원서를 냈는데 본인 말로는 ‘미모에 밀려(?)’ 취업이 안됐단다. 그 다음에 얼굴을 보지 않을 것 같은 도시락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런데 여기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급여가 나오지 않았다. 얼굴도 안보고, 일한만큼 급여도 제대로 나오는 자리를 찾다보니 결국은 공무원이었고, 1995년 발령을 받아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석식은 비교육적인 형태’
처음에는 전라북도 무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을 하다 1999년경 경기도교육청으로 전입했다. 동두천 사동초등학교를 거쳐 2004년 광명시에 왔고, 그때부터 경기도영양교사회 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만 있다가 고등학교는 3년전 부임한 광명북고가 처음이다. 고등학교 급식을 시작하면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석식’문제였다.

“지난 해 까지는 석식을 제공했는데, 이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였어요. 교육청은 석식에 대한 아무런 지침도 없었죠. 학교마다 중구난방 이었어요. 위탁급식 시절, 돈 벌이를 위해 업체가 시작했던 것을 그대로 적용했어요. 내려준 업무지침은 인건비 1.5배로 책정한 것 뿐이었어요.”

석식 업무과정에서 미지급 임금관련 문제가 불거지자 김정미 교사는 본인이 발령받기 전 발생한 일임에도 직접 노동청을 뛰어다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소송까지 가는 상황에서 결국 모든 문제는 ‘석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부터 광명북고는 석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리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어 했다. “아침 일찍부터 1,400명의 점심을 준비합니다. 석식을 하게 되면 점심 급식 후 조금의 쉴 틈도 없이 바로 저녁을 준비해야 해요. 가뜩이나 지금 일만으로도 벅찬데 몇 십만원 더 벌자고 건강을 잃을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불만이 있는 학부모님도 계셨지만 매일 야근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인원보강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해온 것이 말도 안되는 겁니다.”

무엇보다 석식급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매우 비교육적이라고 느껴졌다. 석식은 신청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데, 신청하지 않은 학생들이 와서 먹거나 다른 학생의 이름을 대고 먹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적발하고 찾아내려고 골머리를 쓰는 일도 교육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녁급식을 그만두고 나서 점심급식에 더 많은 힘을 쓸 수 있었고, 그와 함께 급식에 대한 학교구성원들의 만족도도 더 높아졌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김정미 교사는 말한다.

소통으로 만들어가는 광명북고의 점심
급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에 김정미 교사는 학교구성원과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광명북고는 식당에서 배식을 한다. 그래서 학생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급식에 대한 만족도와 감상을 들을 수 있다. “초등학생에 비해 고등학생들은 식습관이 많이 망가져 있고, 편식도 심한 편이죠. 그나마 여학생들은 채소나 과일은 찾아먹지만 남학생들은 오로지 고기, 고기예요. 그래서 점심식사 중인 학생들에게 골고루 먹으라는 말도 하고, 샐러드도 자주 만드는 편입니다.” 오늘 식단은 어떤지, 맛은 괜찮은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직접 물으면서 식단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한다. 소통은 교직원 식당에서도 계속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장선생님을 비롯 행정직원들에게 급식 관련 부탁사항이나 행정사무 등을 미리 말해놓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초등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학부모와의 소통이 많이 부족해 어플리케이션을 이용, 학부모와의 소통창구도 만들었다.

교내 비타민동아리, 보건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잔반줄이기 캠페인도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과 같이 공모전에 출품,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김정미 교사만의 작은 이벤트도 만든다. 수박화채가 나가는 날, 어쩔 수 없이 일회용기를 쓰게 되자 학생들에게 고지를 했다. ‘급식에 일회용기를 쓸 수 없는데 요리 특성상 사용했다. 그릇바닥에 표시를 했으니 당첨된 학생은 선물받으러 영양선생님에게 와라’라고...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일회용기 사용에 대한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보게 되고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김정미 교사는 한걸음 또 가까워진다.

김정미 교사의 소통은 학교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다른 학교 영양선생님들과 만나 서로 레시피와 식단을 비롯,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마을형 교육급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마을단위로 학교를 모아 4~5개 학교가 식단 및 수업자료 연구, 회의를 하는데 가뜩이나 바쁜 영양선생님들이 일로 받아들이다 보니 활성화가 안됐어요. 영양선생님들은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은데,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다 보면 좋은 효과가 나오리라 생각해요.” 영양교사로서 후배 영양교사들에게 멘토가 되어 갈등사레에 대해 의견을 주고, 좋은 레시피도 공유하고 그러다가 ‘잘 해결됐다’, ‘좋은 레시피에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피드백이 올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함께 레시피를 만들고 다른 학교의 이야기도 들어보면서 더 좋은 급식을 위해 노력하다보면 영양교사는 물론 급식을 먹는 아이들도 행복해 지고, 결국 학부모의 행복이자, 모든 교육공동체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김정미 교사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철학이 있는 영양선생님이 되어야
김정미 교사는 영양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만큼 20여년의 경력을 갖춘 베테랑 영양교사다. 그녀는 후배 영양교사들을 교육할 때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영양교사가 되라고 강조한다. 영양교사로서의 철학,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맛이라던지 위생이라던지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맛있고 건강한 급식을 제공하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일하다보면 어느 새 모든 학교주체들이 나를 믿고 지지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서로 그런 신뢰가 생기면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거죠.”

김정미 교사는 자신이 준비한 레시피 그대로 조리가 되어 급식에 제공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한명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한명이 식판을 비우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날 배식하고 남은 반찬은 아이들에게 “더 먹을 사람 나와서 먹어라”라고 말한다. 먹성 좋은 고등학생들을 위한 또 하나의 배려다. 모든 배식을 마치고 나서야 자신의 점심을 먹는다. 그녀의 점심은 교직원 식당에 샘플로 내놓은 식판의 음식이다. 다 식어버린 음식이지만 그것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급식을 끝냈구나’ 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제 잘 먹고, 사고없이 학교에 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점심을 준비한다. 그렇게 그녀의 하루가 시작된다.

광명시는 2학기부터 고등학교 급식비 중 식품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광명북고는 이와 관련 운영위원회도 마쳤다. 김정미 교사는 “가공식품도 시에서 non-GMO 제품을 공동구매하도록 지원해서 식품단가를 낮추면서도 좋은 재료를 쓸 수 있게 해줬다. 시가 식품비를 지원하면 학부모님의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고, 아이들한테는 좋은 재료의 급식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다”며 광명시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리고 조리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개선문제와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도 내비쳤다. “동일노동에는 동일임금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영양교사는 한 학교에 한 명씩 꼭 필요한 자리인데, 굳이 비정규직을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영양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조리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처우와 작업장 환경도 개선될 필요가 있어요. 아이들의 건강과 질 높은 급식을 바란다면 꼭 필요합니다”라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김정미 교사는 “학생들이 학교에 오기 싫더라도 ‘급식 먹으려고 학교와요~’라는 말이라도 하면서 학교에 나오길 바란다”며 애정이 담긴 급식사진을 보여줬다. 그날그날의 급식, 환하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점식을 먹는 모습, 깨끗하게 비어버린 급식판을 들고 ‘v’를 그리며 수줍게 웃는 학생들의 사진도 많았다. 그 사진들을 보니 멀건 카레의 비굴한(?) 추억만을 가진 기자도 입가에 침이 고인다. 배웅하는 김정미 교사에게 결국에는 한마디를 했다.
“선생님, 취재 말고 급식 먹으러 학교 다시와도 되나요?!”

▲ 광명북고의 즐겁고 건강한 점심시간에 만나는 급식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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