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닷컴
오피니언식량칼럼
[기고]우리는 정말 죄가 없다.-송정은 농업회사법인(주)네니아 이사
송정은 농업회사법인(주)네니아 이사  |  mfood119@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15  18:12:4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Kakao Kakaostory 네이버밴드

   
▲ 송정은 농업회사법인(주)네니아 이사
전국 학교급식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영양사들에게 납품대가로 현금과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공정거래를 위반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이런 대형 납품 비리들을 방지하기 위해 주문 시에 특정업체 제품 단수 지정 금지 혹은 규격 지정 금지를 철저히 지키라는 교육청 지침이나 감사가 계속 되고 있다. 또한 지역 지자체들에서 식자재 업체 홍보 담당자들의 학교 출입, 홍보, 샘플 접수 자체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가하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다. 이렇게 해서 특정 업체 몰아주기 등의 비리를 척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친환경학교급식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오래도록 몸을 담아왔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규제들로 불거지는 다른 부작용들을 지켜보면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지만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 그 이야기를 오늘 좀 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오늘 나는 급식실에서 왕만두 주문을 하려고 한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 우리밀 만두로 결정하고 찾아보니 여러 업체에서 만든 만두가 종류도 참 많다. 그 중에 무농약 우리밀을 사용하고 무항생제 돈육을 사용하면서 화학첨가물 없이 만든 좋은 사양의 제품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단수 주문은 안되니 그 중 가장 나은 두 가지를 선택하기로 한다.

A사의 왕만두는 다음과 같이 성분표기가 되어있다.
돈육 30.09%(무항생제/국산), 소맥분 18.97%(무농약밀/국산), 양배추 13.37%(국산), 부추 9.36%(국산), 당면(무명반당면), 난백(국산), 대파(국산), 당근(국산), 마늘(국산), 간장(국산), 정제염(국산), 생강(생강), 정백당, 참기름(국산), 후추

참기름까지 모두 국산에 원산지 표시도 명확하게 되어있고 무엇보다 화학적합성첨가물이나 GMO 원료, 합성조미료가 없다. 마음에 든다.

한편 B사의 왕만두 성분표기를 들여다 보자.
돈육 17.77%(국산), 밀가루32.93(밀/국산), 부추, 숙주, 대파, 양파, 양배추, 배추, 마늘, 당면, 두부(대두, 황산칼슘, 규소수지, 유화제, 증점제), 난백(계란), 건무, 콩단백, 쇠고기맛분N(복합조미식품), 참기름, 비프인헨서(소스류), 양조간장, 정백당, 정제염, 글루텐, 에으에스-50(산도조절제, 정제염, 시클로덱스티린), 핵산아이지(향미증진제), 유화유(D-소르비톨액,대두유,유화제), 생강분말, 후추가루, 스피루리나분말

음… 같은 우리밀 만두라도 성분이 꽤 다르다. A, B사 모두 밀가루는 우리밀이지만 돈육 함량도 다르다. B사의 만두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세부적인 표기가 불분명한 복합 조미식품을 넣었고, 각종 첨가제(유화제, 증점제, 산도조절제, 향미증진제 등)에 국산 표시도 되어있지 않으니 수입산 재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콩단백으로 부족한 돈육 함량을 보충하기도 했다.

규제 이전이라면 나는 주문 시에 ‘무항생제 국내산 돈육 함량 30.9%, 무농약우리밀, 무화학적합성첨가제, 무화학조미료’ 등으로 규격을 명기했을 터이고, 납품업체는 지정하여 주문한 A사의 왕만두를 가지고 올 수 밖에 없겠지만, 이제는 표기를 별도로 할 수도 없고 제품을 정확하게 지정해서 발주할 수 없으니 납품하는 업체의 선택에 맞추어 물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납품업체는 A사 와 B사 중 어떤 제품을 선호할까?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특성대로라면 A사의 만두보다는 B사의 만두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B사 보다는 A사가 양질의 국내산 원료를 사용했고, 화학적 합성첨가제나 화학조미료로 맛이나 성질을 조정하지 않아 더 많은 제조 원가가 들었고, 그러다 보면 업체 공급가도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급가가 높으니 납품업체의 이윤이 적을 것이다. 게다가 B사의 제품도 우리밀로 만든 것이니 납품업체는 꺼릴 것도 없다. B사의 제품을 납품하는 것이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이득이 많이 남을 것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만두를 먹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A사의 제품이 B사의 제품보다 원료 함량이 높으므로 만두 한 개를 먹더라도 아마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데… B사의 만두에는 감칠맛을 내주는 화학조미료가 넉넉히 들어가 있으니 어쩌면 더 맛나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죄가 없다. 규정에 맞춰 A사와 B사의 두 품목 중에 하나를 선택해 납품한 업체도, 더 좋은 A사의 만두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었지만 B사의 만두를 납품 받은 나 역시도 죄가 없다. 왜? 정책과 규정에 딱 맞는 선택과 주문이었으니까. 그러니 감사에서 문책도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최선의 급식을 먹지 못하게 된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나? ‘무엇이든 어른 말 잘 들어야해. 주는 대로 잘 먹으면 튼튼해 질꺼야!’ 라고 말해야 할까? 헛웃음만 나온다. “그래, 뭐 수입밀이 아니고 수입산 돼지고기가 아닌 것만도 어디야” 하고 위안을 삼을 뿐.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정말 죄가 없으므로... 

< 저작권자 © 식량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송정은 농업회사법인(주)네니아 이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네이버밴드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Kakao Kakaostory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공지사항
제호명(매체명) : 식량닷컴(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2년 1월 26일  |  발행일 : 2012년 3월 1일  |  발행처 : 주식회사 식량닷컴
<본사>(10016)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대서명로 67-20  |  <서울사무소>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62길 9 산림비전센터 11층 1103호
전화 : 02-761-1448  |  팩스 : 02-761-1449  |  메일 : mfood119@hanmail.net
등록번호: 137-86-32185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아 50341  |  대표이사/발행인 : 한기자  |  편집인 : 한기자  |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기자
구독료 : 1만원/월(12만원/년)  |  구독료·광고비 : 주식회사 식량닷컴 355-0023-2307-53 (농협)  |  제보 및 구독 문의 : 010-5285-7951(이종원)
이사 : 한기자 김원봉 민동욱 박종아 안병권 이원영 정근우 정기환 정승모 정명옥 허헌중 | 감사 : 이래철 장성자
Copyright © 2012 식량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food119@hanmail.net